1963년 8월 30일 강원 철원군 5사단 비행장. 당시 육군대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위해 17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감하는 전역식 인사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5·16군사정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놓고 논란이 일자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전역사(轉役辭) 문구를 거론했다. 그는 8일 경선 토론회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당시 헌법을 짓밟은 데 대해 잘못을 인정하라”고 몰아붙이자 “그래서 제가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답했고, 아버지도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자 원고지 20장 분량의 전역사에는 5·16군사정변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소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 의원은 참모들의 건의로 최근 이 전역사를 다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전역사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의 혁명이 얼마나 불행한 것이며, 그 혁명의 악순환이 종국적으로 국가의 쇠망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은 본인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껴왔다’ ‘여러분들께 다시는 혁명이라는 고된 시련을 되풀이하지 않게 할 것을 확신한다’ 등의 발언을 통해 자신이 일으킨 군사정변에 대한 불법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박 의원이 최근 “(5·16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던 평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혁명의 불가성은 우리가 직면했던 혁명 직전의 국가 위기에서 인정되어야 할 것”이라며 불가피성을 강조한 대목 역시 “당시 국민이 굶주리고 이대로 놔두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없어질 수도 있어서 (아버지가)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박 의원의 최근 발언과 통한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자유민주주의는 한낱 장식에만 그쳤고, 도의의 타락과 사회의 혼란상황에서 부정, 부패, 독재는 민주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였다”라며 “공산 간접 침략 앞에 국군은 존망의 위기에 함입되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사멸에 가까운 생명이 회생되기 위하여 가혹한 수술이 불가피하였기에 내 평생과 이 민족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못할 1961년 5월 16일 비분과 눈물을 머금고 겨레가 피로에 지친 새벽의 수도에 혁명의 총부리를 돌려야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의 최종 목표로 부강한 나라를 제시했다. 그는 “빈곤의 악순환 속에 시달려온 민족이 새로운 정치풍토를 조성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룩할 비약의 단계로 이행하고자 하는 이 대업은 군사혁명 과정뿐 아니라 민정에도 기필코 계승되어야 한다”며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고야 말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범국민적인 혁명을 전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박 의원의 “나라 발전이나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는 발언은 박 전 대통령의 당시 목표였던 경제적 자립을 달성했다는 점을 5·16군사정변의 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바람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통령은 전역사에서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박 의원이 5·16군사정변을 ‘쿠데타’로 인정하는 걸 꺼리는 이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