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가 저(低)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지만 올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대선주자들은 우리나라가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관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이 일부 부유층과 대기업에 부(富)를 몰아주는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 방안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동아일보가 16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주요 대선주자들의 출마선언문을 분석한 결과, 대선 주자들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관한 성장 담론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일자리를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 한국을 이끌겠다는 정치 리더들의 말 속에는 엔진(성장)은 없고 브레이크(규제)만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 규제와 분배 앞세운 정치 리더들
대부분의 여야 대선주자들은 현재의 경제성장이 불균형만 키웠다며 문제점을 부각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경제주체 간 격차가 벌어지고 불균형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도 “경제성장의 과실(果實)을 일부 부유층과 대기업이 독점했다”고 말했다. 대선주자 가운데 김문수 경기도지사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며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 파이 나누기에만 초점… “경제 키우자” 목소리 안들려 ▼
대선 주자들은 불균형 해소의 해법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앞다퉈 쏟아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문재인), ‘나눔 경제’(김두관), ‘공동체 중심의 경제민주화’(손학규), ‘재벌 개혁’(정세균) 등 용어는 조금씩
달랐지만 순환출자 제한, 출자총액제한 부활 등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주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의원은 기업에 대한 단호한 법 집행을 앞세웠고, 김태호 의원도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사람들과 싸워 이기겠다”고 선언하며 대기업에 화살을 돌렸다.
각 후보가 내놓은 일자리 창출 해법도 정부 재원을 사회 공공서비스에 투입하는 방식이거나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동반성장론 일색이었다. 대부분 ‘키우기’보다는 ‘나누기’에 방점을 둔 것이다. 박 의원은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키우는 ‘쌍끌이
경제’를 강조했다.
김문수 지사는 기업의 자유 보장과 규제완화를 약속해 다른 대선 주자들과 차별화했다. 김 지사는
증권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으로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관치보다는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게 국민의 현재와 미래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성장 해법 시급한데 고민이 없어”
일부
대선 주자들은 정보기술(IT) 융합, 바이오, 나노, 신재생 에너지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기업의
손발을 묶겠다는 규제와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신성장 전략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게중심이 규제에
쏠려 있어 성장 전략은 뒤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주자들의 출사표에서 성장이 사라진 것은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약속했다가 실망을 안긴 이명박 정부와의 선 긋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회 양극화로 계층간 갈등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기업 편을 들었다간 표를 깎아먹기 십상이라는 걱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 주자들로 하여금 성장을 외면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과거 대선에선 성장이 중요한 화두였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성장 정체를 강한 리더십으로 극복하겠다는 경제 성장론을 앞세워 당선됐다. 정동영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도
출마선언문에서 “시혜적 복지가 아닌 생산적 복지가 필요하다”며 성장에 무게를 뒀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출사표에서 성장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집권기간 내내 로봇, 소프트웨어 등 10대 신성장동력을 추진하며
성장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대학 교수는 “부가 일부에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주로 금융자본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지금 우리 정치권은 성장의 주체인 모든 대기업이 문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 및 서민에 흘러가는 효과를 일컫는 성장의 낙수(落水)효과가 부족하다며 기업 활동을 옭죄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일시적인 수요 감소가 아닌 장기적 문제인 만큼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성장을 도외시한 채 분배와 복지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치권과 정부가 저성장을 극복할 해법을 찾으려하지 않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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