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신청 항목서 ‘안보’ 아예 빠져… 보수단체 명함도 못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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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의 서울시, 지원 시민단체 63% 물갈이

올해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현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보수적 성향을 띤 대북단체들이 대거 지원 대상에서 빠진 점이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으로 이번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대표로 있던 사단법인 열린북한은 2010년과 지난해 각각 ‘우수’ ‘양호’ 등급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에는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그 대신 한국청년연합(KYC) 서울지부는 ‘600년 역사도시 서울 만들기 한양도성 시민참여 프로그램’으로 3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올해 지원 단체 가운데 최고액이다. KYC는 김형주 정무부시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고 박 시장의 일정을 책임지는 천준호 기획보좌관도 대표를 맡았다.

○ 대북 라디오, 탈북자 지원 사업 배제

열린북한은 지난해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가는 통일주파수’라는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들이 직접 다양한 정보가 담긴 대북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북한으로 송출하는 사업이다. ‘라디오 남북친구’ 10, 11기를 30명씩 모집해 사업을 진행했다. 열린북한 관계자는 “일반 시민들이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대북 라디오방송 제작사업과 딱 맞는 지원 분야가 올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 시장 입맛 맞게 바뀐 지원 기준

기존 사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올해 공모사업 분야가 바뀌는 바람에 지원 자체가 어려워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서울시가 제시한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분야는 △그물망 복지 제공 △관광·문화도시 활성화 △안전문화 및 재난극복 △자원절약·환경보전 △글로벌 시민문화 구축 △사회통합과 평화증진 등 크게 6개 분야다. 이 가운데 사회통합과 평화증진 분야에 시가 예를 들어 제시한 사업을 살펴보면 ‘청소년·시민 안보교육, 통일 및 평화운동, 남북 어린이 교육지원, 새터민 가정 정착지원 등’이라고 공고문에 표기돼 있다.

그러나 올해 공고문에는 대북 관련 사업 분야 자체가 전혀 표기돼 있지 않다. 올해 3월 시가 공고한 민간단체 지원사업 공모에 따르면 △기획사업(비영리조직·NPO 역량 강화, 정책연구 및 정책제안 분야) △단체 제안사업(시 지정, 자유제안 분야) 등 크게 2개 유형 4개 분야로 구분했다. 공모문 자체에 ‘안보’나 ‘통일교육’ 등 자신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 보니 지원 자체를 못했거나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 시 관계자는 “올해는 서울시민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 시민위원 소속 단체는 지원금

시민사회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주요 사업마다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들 시민위원회에 위원이 소속된 시민단체도 이번 지원사업 대상이다.

올해 ‘주민센터를 기반으로 한 마을 의제 발굴 및 모형개발’로 2000만 원을 지원받는 열린사회시민연합의 대표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의 최순옥 위원이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활동가 양성’으로 2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이 단체의 대표는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시민위원인 남미정 씨다. ‘제돌이 야생방사’ 시민위원인 하지원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에코맘코리아도 에너지 절약 교육으로 2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박 시장을 비롯해 시민단체 출신들이 시정에 참여하면서 시민단체가 오히려 동력을 잃었다고 진단한다. A단체 관계자는 “시 예산을 지원받는 시민단체가 시민위원회에서 시정을 비판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라며 “정부와 행정기관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시민단체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최 대표와 남 대표는 “프로젝트를 제안해 지원받는 것과 시민위원으로 시정에 조언하는 것은 별개”라며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한 사업이 있다”고 주장했다.

[채널A 영상]굶주리는 북한 주민들 ‘밀수 현장’ 영상 입수

:: 비영리민간단체지원제도 ::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근거해 공익활동을 벌이는 민간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라 등록된 정규 단체가 지원 대상이다. 각 단체가 추진하는 1개 사업별로 최대 3000만 원을 지원한다. 지원사업은 각 지자체가 구성한 공익사업선정위원회가 선정한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박원순#시민단체#물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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