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입 열었지만 할 말은 안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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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부산대 특강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은 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결심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은 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결심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고향에서도 대선 출마에 대해선 속 시원하게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면서 ‘안철수식 대선 출마 선언’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30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열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통진당 당권파의 종북 의혹과 관련해 “진보 정당은 인권, 평화라는 가치를 중시하는데 이런 잣대가 북한에 대해서만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북한이 인권이나 평화 문제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3대 세습, 인권 및 핵 문제 등에 대해 이석기 이상규 등 통진당 당권파 의원들이 동문서답 식으로 답변을 피하거나 말을 바꾼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통진당 사태에 대한 안 원장의 이날 발언은 새누리당 논평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도 높았다. 지난달 부친(안영모 부산 범천의원 원장)을 통해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자신의 발언이 알려져 논란이 인 것도 감안한 듯했다.

안 원장은 “북한 내의 이런 문제가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며 “개인의 사상이야 헌법에 보장되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은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을 ‘구체제’란 표현으로 비판해왔던 안 원장은 이날 강연에선 ‘구태’ 등의 표현을 동원하며 비난했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서 여야 누구 한쪽이 이기면 상대방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절망한다. 그러면서 증오의 악순환에 빠진다”며 “여전히 정치가 과거의 구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이 국회 개원일인데 원 구성도 제대로 안 돼 있고 날이 가득 서 있다”며 “심지어 여야 간에 상대방의 유력 정치인을 두고 한쪽에선 10년째 ‘어떤 분의 자제’(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선 상대방을 싸잡아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선 출마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정치를 하게 된다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저에게 던지는 과정에 있다. 저에 대한 지지에 담긴 뜻을 파악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면 제가 직접 분명하게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누구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믿지 말기 바란다”고도 했다.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제안한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론’에 대해서도 “분열이 아니라 화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철학을 보여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답할 성격은 아니다”라고 했다.

안 원장의 이날 발언은 3월 27일 서울대 강연에서 밝힌 “사회발전 도구로 쓰일 수 있으면 그게 설령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톤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곧 내가 직접 밝힐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강조한 셈이다. ‘안철수 대선 출마설’이 공론화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고향에서조차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데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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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원장이 이날 대선 출마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 대신 정치권 전반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총선 이후 정치 지형 변화로 대선 출마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단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고 정치 현안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선 정국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시도라는 것. 총선 후 아직 야권 후보 중에서 아무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출사표를 던지는 데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을 법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이 지금은 출마 선언을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강연 막판에 갑자기 박근혜 전 위원장과 문재인 고문 등 ‘경쟁자’들을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박근혜 전 위원장, 문재인 고문은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며 “박 전 대표는 신뢰성, 지도력이 뛰어난 분이고 문 고문은 국정경험이 있고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자기는 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은 채 기성 정치권만 실컷 비판한 데 대해 스스로 부담감을 느낀 듯했다.

부산=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안철수#대선출마#통합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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