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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새 최고위원 4명 프로필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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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5 18:32
2012년 5월 15일 18시 32분
입력
2012-05-15 18:21
2012년 5월 1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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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핵심으로 꼽혀온 재선의원이다.
19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으나 12월 대선을 이끌 당 지도부에 진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이지만 분석력과 전투력이 뛰어나 친박 내 전략통으로 통한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성 경제전문가로 당의 강세지역인 서울 서초갑에 전략공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선대위' 대변인을 지내면서 경쟁후보였던 이명박 후보 진영에 대한 주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이듬해 친이(친이명박)계가 주도한 18대 총선 공천에서도 살아남아 서초갑에서 재선됐으나 19대 총선에서는 당 강세지역에 세 번 공천을 줄 수 없다는 공천위원회의 원칙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4·11총선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당의 총선 승리에 기여, 향후 대선 국면에서 중용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18대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에서 활동하며 파생상품 거래세법(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의 입법화를 위해 노력했다.
옛 내무부장관과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김태호 전 의원의 맏며느리이다. 남편 김영세 연세대 교수와 3남. 김 교수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싱크탱크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의 핵심 멤버로 알려져 있다.
△마산(48)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UCLA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제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새누리당 19대 총선종합상황실장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
방송기자 출신의 4선 의원. 당내 친이(친이명박)계로 5·15 전당대회에서도 친이계 대의원·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생활도 했다.
이후 중학교 영어교사, MBC 기자, MBC 노동조합 초대 전임자를 거쳐 1996년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들어왔다.
2000년 16대 총선을 시작으로 경기도 안양 동안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당 전략기획위원장, 홍보기획본부장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부터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2009년 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간판사업인 4대강 사업예산 등이 포함된 2010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 말 새해 예산안 파동으로 당시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물러나면서 정책위의장이 됐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에서 활동해 복지 분야에 폭넓은 식견을 갖고 있으며 개각 때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부인 권은정(49) 씨와 1녀.
△광주(54)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서울대 총학생회장 △16, 17, 18, 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 홍보기획본부장, 원내수석부대표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국회 윤리특위·예결특위 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
경제관료 출신의 3선 의원으로 정치권은 물론 중앙·지방정부에서 경력을 두텁게 갖췄다.
행정고시 합격후 1980년대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등 공직생활의 첫 13년을 행정부에서 보냈다.
1992년 통일국민당 진천·음성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정계에 발을 들였으며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으로 당적을 바꿔 출마, 당선돼 재선까지 성공했다.
자민련 정책위의장을 지냈던 그는 'DJP 공조'로 2001년 40대의 나이에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공조 파기로 5개월 만에 물러났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2005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충북도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의 전기를 맞았다.
도지사로 재직하면서 '경제특별도 건설'에 주력해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함께 169개 기업, 23조원의 투자유치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을 때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고, 당론과 달리 초·중등핵 무상급식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민주당 이시종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농림부장관과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운갑 전 의원의 아들로 "정치는 고향처럼 친숙한 세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이옥배(56) 씨와 2남.
△충북 진천(59) △성균관대 △행정고시 합격(22회)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15, 16, 19대 의원 △자민련 정책위의장 △해양수산부 장관 △충북도지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
변호사 출신으로 4.11총선에서 부산 서구에서 당선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당내에서는 친박(친박계)계로 분류된다.
국내에는 드문 해양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사법고시 1,2차에 합격하고도 서울대 재학시절 시위 경력을 이유로 면접시험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가 다시 번복돼 합격한 전력으로 유명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부산 서구에서 무소속 박찬종 후보와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의 열린우리당 최낙정 후보를 제치고 승리, 금배지를 달았다.
원외 인사 시절에는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부산경남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당 혁신에 목소리를 냈다.
2006년 강재섭 당대표 시절, 공동 대변인에 기용돼 당의 '입' 역할을 했다.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친이명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탈락하자 다른 친박 의원들과 함께 탈당, '친박 무소속연대'로 당선됐다.
이후 복당했으나 친박계가 당내 비주류로 있으면서 활동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친박 의원모임인 '여의포럼'을 이끌었다.
그러나 작년 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새누리당 간사를 맡았을 때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인 이태숙(48) 씨와 1남2녀.
△부산(53) △서울대 법대 △뉴욕대 법대 △사법시험 합격(25회) △변호사 개업△17, 18, 19대 의원 △한나라당 대변인 △새누리당 부산시당위원장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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