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대선 앞두고 말만 요란했던 선거개혁, 결국 공염불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18대 국회에서 논의돼온 각종 선거제도 개선안들이 물 건너갈 위기에 놓였다. 폭력과 반목으로 얼룩졌던 18대 국회가 임기 말 여권은 쇄신, 야권은 통합의 소용돌이에 각각 휩싸이면서 여야의 논의 테이블이 아예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여기에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는 기성 정치권의 ‘기득권 지키기’ 심리도 깔려 있다. 선거개혁은 정치개혁의 출발이란 점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이 오히려 정치문화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여야 간사는 지난달 중순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이달 1일경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때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보고를 받은 뒤 내년 19대 총선 선거구 획정 논의를 시작으로 선거 관련 각종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이후 냉각된 여야 관계가 풀리기는커녕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파문 등으로 오히려 경색되면서 정개특위가 장기간 표류하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민참여경선(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주장도 ‘말잔치’로 끝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올해 초부터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전국에서 모든 정당이 동시에 경선을 치러야 한다. 막대한 국민 세금도 들어간다. 그럼에도 인지도가 높고 조직 동원 능력이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만 유리할 수 있다. 그만큼 정치 신인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법도 바꾸고 제도도 다듬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정개특위에서 정식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당장 13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마당에 이런 ‘혁신적 제도’를 도입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강하다.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제인 일명 석패율제 도입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여야 지도부가 모두 찬성하고 있지만 비례대표 정수 문제 등과 맞물려 이미 논의의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패율제를 도입하면서도 각 분야 전문가와 소수집단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 정원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정개특위에서는 오히려 지역구를 더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19대 총선에서도 한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폐해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가장 큰 변수인 재외국민선거도 이 상태로 가면 겉돌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13일 시작된 재외국민투표 등록접수 결과 6일 현재 1만5043명이 신고했다. 전체 신고대상자 223만 명의 0.67%에 불과하다. 신고가 이처럼 저조한 것은 유권자들이 공관까지 직접 찾아가 등록을 해야 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우편등록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표 계산에 바쁜 정치권은 소극적이다.

중앙선관위는 재외국민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대 국외 선거사범에게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등의 제재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국회에선 논의되지 않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달라진 선거환경을 고려해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허용기간을 없애는 문제도 시급히 다뤄야 할 과제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SNS에서는 수시로 정치적 의사표현이 이뤄지고 있어 이런 규정이 실효성은 없고 논란만 일으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현재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여야가 충돌할 수 있는 쟁점 사항은 논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결국 분구가 불가피한 몇 개 선거구를 쪼갠 뒤 정개특위 활동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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