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은 없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한반도 비핵화 약속 같은 극적인 돌파구도 없었다. 16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비행기 트랩에서 내렸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86)은 27일 무표정한 얼굴로 미국행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1월 25일 북한에 무단 입국한 뒤 체포돼 8년 노동교화형과 7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는 약 7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다 성사된 것처럼 여겨졌던 김 위원장 면담에 실패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27일 오전 카터 전 대통령이 항공편으로 평양을 떠났다”며 “김 위원장이 미국 정부와 카터 전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보고받고 불법 입국한 미국인 곰즈 씨를 특사해 석방할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또 통신은 2박 3일 일정의 방북 기간에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의 당국자들과 만나 북-미 관계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북 첫날 카터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조선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라는 뜻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박의춘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북-미 관계 및 핵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벌였다는 것.
하지만 미국은 천안함 사태로 촉발된 현재의 제재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행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를 거듭 천명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카터 전 대통령이 귀국길에 오르자 즉시 환영 논평을 내고 “카터 전 대통령의 여행은 오로지 곰즈 씨를 데려오기 위한 개인적, 인도주의적, 비공식적인 임무였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정부 초청으로 방문했고 미 정부는 이번 방북을 제안하지도, 주선하지도 않았다”는 말로 이번 방북의 비(非)정치적·정책적 성격을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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