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 도는 이명박 정부]‘친기업-불통’에서 ‘친서민-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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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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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키워드로 짚어본 MB정부 집권 2년 반

《이명박 정부가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진보 정권 10년을 끝내고 출범한 현 정부는 초창기부터 분출하기 시작한 이념 지역 세대 계층 갈등 속에 우왕좌왕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예기치 않은 외생변수까지 겹치는 바람에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국정 좌표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MB노믹스’의 핵심 가치가 친(親)기업, 경쟁, 성장 등에서 어떻게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 윤리의 힘, 사회적 책임 등으로 변화해 갔고, 이에 대한 청와대 안팎의 평가는 어떤지를 핵심 키워드로 되짚어 본다. 》
◆ 불통(不通)과 소통(疏通)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낮은 점수로 나오는 항목이 ‘소통’이다. 이 대통령은 집권 2년 반 동안 대국민 담화와 국민과의 대화, 라디오연설을 비롯해 시장이나 기업 방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민과 대화를 해 왔지만 ‘소통 부재’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광우병 사태 당시 대규모 촛불시위처럼 이명박 정권 반대세력이 원래의 사안을 넘어서서 정권의 이념적 지향성과 정당성 자체를 공격한 경우에는 소통 부재 논란 자체가 정치적·이념적 성격을 띤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정부의 각종 정책 추진이 일방통행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은 현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의 불통, 여권 내에서의 불통이라는 지적이다. 2008년 9월 이 대통령이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 여권은 계파 갈등, 권력 갈등에 휘말려 있고 청와대는 이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각계의 대표적인 인사를 망라한 사회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발족한 데 이어 지난달 청와대 3기 조직개편 때 ‘옥상옥’이라 할 수 있는 사회통합수석비서관을 신설한 것은 여권 핵심부에서도 소통 부재에 대한 세간의 지적을 크게 의식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 당정청 수뇌부 ‘9인 회의’ 정례화 등을 통해 여권 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차원이다.

친기업과 친서민

7% 경제성장,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을 뜻하는 ‘747’ 공약은 파이를 키워 골고루 잘살자는 ‘MB노믹스’의 요체였고 이는 집권 초 친기업 정책 기조로 이어졌다.

2008년 가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747’ 구호는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친기업 정책 기조는 유효했다. 말 그대로 ‘생존’ 차원에서 국제사회에서 경쟁하는 우리 대기업들을 적극 보호함으로써 금융위기의 파고를 무사히 넘기는 데 모든 정책적 주안점이 두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빨리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지만 정작 국내에선 양극화 심화라는 모순이 발생했다.

이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의 충돌로 이어졌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와 서민들 사이에서 “지난 정권 때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매년 6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은 무색해졌고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8.5%까지 치솟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던 이 대통령이 ‘서민 프렌들리’를 선언하고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을 나눌 때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어 정부의 고심은 여전히 깊다.

탈(脫)이념과 실용

30% 안팎의 보수와 상당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이 대통령은 스스로 ‘이념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 했고 ‘사회통합’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갈증을 느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종합부동산세 폐지 논란 등을 둘러싼 이념갈등 계층갈등을 거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이 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반영해 지난해 6월 박형준 당시 대통령홍보기획관 등이 논리적으로 가다듬은 게 이른바 ‘중도실용’ 노선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념적으로 좌파 우파로 갈라져 있는 사람들도 중도라는 개념으로 끌어와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선언했고, 중도실용 노선은 이후 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중도실용은 그 자체가 현 정부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거나 목표라고 할 순 없다는 지적도 많다. 오히려 특정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가까운 담론이라는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현 정부의 ‘철학의 빈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현 정부는 중도실용 기조를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태도다.

여기엔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상당수 중도 성향 유권자의 마음을 다시 끌어안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만 보수 진영의 여론 흐름은 이 대통령으로서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이 대통령이 대북관계에서 보수적 기조를 분명히 하고 여러 공·사석에서 “건강한 보수를 바탕으로 중도실용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보수 세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공정(公正)과 편중

이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정의 핵심 가치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는 임기 전반부에 대한 내부 평가 결과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따라 도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했던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좌절과 민심 이반은 심각한 과제로 부상했다. 양극화 해소가 지상과제이나 그렇다고 과거 정부의 ‘분배’ 위주 정책을 쓸 수도 없고 성장만 강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경쟁의 과정은 공정해야 하지만 결과는 스스로 책임진다’는 개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은 경쟁의 과정이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정한 기회, 공정한 게임의 룰 정립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 대통령의 평소 지론을 국정의 철학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 명지대 김형준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 세대는 “나의 능력과 열정과 무관하게 부모님의 경제력 격차, 출신 대학 지명도에 따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한국 사회의 ‘뒤틀린 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냉랭하게 평가하는 시각도 엄존한다. 눈에 띄는 편중과 무원칙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인재 발탁 과정의 지역적 편중은 없는지, 정치인과 기업인 사면이 엄정하게 이뤄졌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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