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공동지방정부’ 초유의 실험… 정책자문이냐 권력공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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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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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에서 단일화를 통해 승리를 거머쥔 야권이 ‘공동지방정부’라는 초유의 정치실험에 나섰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4당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선거 승리 후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합의한 지역은 인천 강원 충남 경남 등 광역단체 네 곳과 서울 강서와 경기 성남 등 기초단체 28곳이다. 물론 앞으로 운영될 공동지방정부는 여러 세력이 대등한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실질적인 공동정부라기보다는 당선자 측이 기타 세력의 의견을 지방행정에 반영해주는 ‘정책연합’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순탄한 출발
인천 “17개委 범야권 참여”… 강원 “시민단체와 정책협의”

갈등요소 잠복
功 앞세워 지분행사 가능성… 단체장 활동에 족쇄 될수도

정치권에 새 변수
향후 선거 野연합 자극제… ‘행정이 이념에 발목’ 우려도


이번에 이뤄진 야권 단일화의 대부분이 지지율이 엇비슷한 후보 간의 단일화가 아니라 군소 야당 후보들이 사표(死票)를 막기 위해 제1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야권이 가동할 공동지방정부 실험의 성패는 2012년 총선, 대선 등 앞으로 이어질 각종 선거에서도 야권 연합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 기타 야당 및 시민단체 참여 틀 마련

일단 출발은 순탄해 보인다. 야권 당선자들은 다음 달 공식 취임을 앞두고 공동지방정부 구성 준비에 착수했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다음 주초 출범할 인수위원회와 취임 후 발족시킬 구도심발전위원회, 경제수도비전위원회 등 7개 위원회와 10개 정책자문위원회에 민노당, 참여당, 시민단체 인사들을 참여시킬 방침이다. 송 당선자 측 김성호 대변인은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책 입안과 추진 과정에서 야권 공조와 후보 단일화 정신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인수위원회에 민노당과 시민단체를 참여시켜 공동 정책을 입안해가겠다고 밝혔다.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는 당선 직후인 3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도정협의회’를 통해 민주당 민노당 참여당 등의 정책을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김 당선자는 “민주도정협의회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분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 당선자는 시정개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위원장은 민노당이 맡는다. 인수위에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 전문가들, “쉽지 않을 것”


공동지방정부는 단체장들이 공식 취임한 뒤 운영 방향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단체장들의 구상을 종합해보면 기타 야당들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기구는 법적 구속력 없는 자문 성격이 될 공산이 크다. 지방공동정부가 ‘선언적’ 의미 또는 정책연합의 차원에 머물 가능성이 클 것이란 얘기다.

물론 정책연합이라 해도 환경, 개발 등 주민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그동안 지방행정의 아웃사이더로 머물러왔던 지역 진보진영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은 의미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지역 진보진영의 책임의식과 현실적 균형감을 배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협의체의 특성상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책방향의 일관성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단체장의 활동폭을 제한하는 족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정 이념 편향적 세력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중재 역할을 한 ‘공훈’을 등에 업고 지분을 행사함으로써 지방행정에 이념이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김대중(DJ), 노무현 정부 시절 폐해가 극심했던 ‘이념적 동지 집단’에 의한 권력 나눠먹기, 행정의 이념화 현상이 지역 차원에서 빚어질지도 염려된다.

주요 정당 간의 노선 차이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경우 무상급식 전면 실시 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구도심 개발에 따른 철거민 문제, 환경미화원 등 비정규직 문제 등에 시각차를 보여 왔다. 당장 공무원노조 징계 문제만 해도 민주당 구청장들이 공무원노조 징계를 반대하는 민노당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찬성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김의영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정당들이 정책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또 갈등이 발생했을 때 단체장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걸림돌이 많다”며 “기대는 크지만 자칫 지방정부 행정 난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정부’란 개념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 쓰이는 것에도 전문가들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DJ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의 ‘DJP 연합’으로 정권 창출에 성공한 뒤 국무총리를 비롯한 6개 장관직을 김 전 총재에게 배분했다. 그러나 양측은 각종 정책을 놓고 불협화음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지사나 시장 등 자치단체장은 대통령처럼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은 게 아니다”며 “‘자리 배분’이 공동정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닌만큼 단체장이 기타 야당의 정책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민주당이 참고한 日사례
1960, 70년대 野연합으로 도쿄도지사 3선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은 올 초 1960, 70년대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야권연대로 3선에 성공했던 미노베 료키치 전 지사의 사례를 공동지방정부 성공 사례로 연구했다.

도쿄교육대 교수였던 미노베 지사는 1967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일본 사회당과 일본 공산당의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시 여당이던 자민당 후보를 14만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일본의 제1야당이었던 사회당은 군소 야당과의 연대를 위해 본래 낙점했던 후보를 포기하고 재야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던 미노베 교수를 내세웠다. 그는 1971년, 1975년 선거에서도 연달아 당선됐다.

민주정책연구원의 김영필 당시 책임연구원(현 당대표 비서실 부국장)은 미노베 도지사의 성공 요인으로 △연대한 야권의 도의회 과반 점유 △중앙당의 인사 불개입 △도정의 완전 자율화 △정책 개발과 실행 과정에서의 연합 등을 꼽았다.

김 연구원은 “미노베 도지사가 야권에 나눠줄 마땅한 정무직이 없었다는 점이 현재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당시 미노베 도지사는 교육위원회 인사위원회 감사위원회 등에 연대 야당 측 인사들을 대거 등용해 정책 개발 과정에 이들의 의견을 폭넓게 받아들임으로써 야권 연대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미노베 도지사가 추진하려고 했던 정책을 공산당 등 연대한 야당이 반대하면서 적지 않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며 “정책적 지향점이 다른 정당 간에 공동으로 지방정부를 꾸려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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