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탄올 리무진… 자연분해 ‘녹말 컵’… 1만5000명 ‘그린 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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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기후회의 개막… 현장을 가보니
송평인 특파원

호텔~회의장 셔틀운영 안해 자전거-대중교통 이용 유도
덴마크 “극좌시위 막아라” 경찰력 절반 6000명 배치
한국 정부대표단 104명 사상 최대 규모 파견

7일 개막된 덴마크 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유엔 기후회의)에는 110개국 정상을 비롯해 각국 협상단과 기자 환경단체 등 1만5000명이 참석해 국제회의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총 104명의 정부 대표단이 참석한다. 이번 대표단 규모는 환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대표단 중 사상 최대다. 회의 관계자는 “회의장인 벨라 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두 배가량 되는 3만4000명이 등록신청을 했으나 수용 능력이 부족해 절반은 반려됐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코펜하겐 회의는 환경재앙이 없는 세상에서 자랄 수 있게 해달라는 어린이들의 간절한 호소가 담긴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한 소녀가 살던 집과 푸른 잔디가 깔려 있던 놀이터가 순식간에 황무지로 변했다. 이어 홍수와 폭풍이 몰려오자 소녀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제발 세계를 구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수천 명의 회의 참석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의 개막연설에 앞서 단상에 오른 덴마크 소녀합창단은 지구를 살려달라는 애절한 노래를 각국 협상대표들에게 들려줬다.

코니 헤데고르 총회 의장은 “이번 회의에서 (합의할) 기회를 놓친다면 더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합의에 이르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열쇠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싸울 수 있도록 돕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밝혀 재원 문제가 합의 도출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코펜하겐 회의 개막 직전에 공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과 주요 개발도상국들이 스스로 밝힌 온실가스 감축 약속은 지구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묶기 위해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라젠드라 파차우리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의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최근 한 영국 대학의 기후연구소에서 해킹당한 e메일이 유포되면서 지구온난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클라이밋게이트(Climategate)’라고 부르며 맹렬히 공격했다.

2주 전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기후연구센터 서버에서 e메일이 해킹됐는데 지구온난화를 지지하는 주요 학자들이 주고받은 이 e메일에서 온난화에 대한 대응이 절박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각종 연구 데이터를 조작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왔다. 또 온난화가 시급한 과제가 아니라는 학자들의 논문이 주요 학술지에 공개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흔적도 나타났다. 이 e메일을 둘러싸고 특히 미국에서 심각한 논란이 일었다.

파차우리 의장은 “일부에서 이번 회의의 성공을 저지하고 IPCC의 권위를 훼손하기 위해 불법적인 행위까지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IPCC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해킹 사건이 아마추어의 짓이 아닌 고도로 정밀한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며 유출을 지휘한 당사자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을 지목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226개 환경단체의 연합조직인 ‘Tck Tck Tck’는 ‘공정하고 야심 차며 구속력 있는’ 기후변화 협약을 마련하라고 각국 정상들에게 촉구하는 내용의 집단청원을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에게 전달했다. 이 청원에는 전 세계 1000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참여했다.

또 급진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기함 한 척이 덴마크 코펜하겐에, 한 척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닻을 내렸다. 코펜하겐에 정박한 아크틱 선라이즈호는 ‘우리의 기후, 우리의 미래, 당신들의 결정’이란 플래카드를 내걸고 유엔 기후회의 참석자들을 압박했다. 레인보 워리어호가 오슬로에 간 것은 10일 노벨평화상을 받으려 오슬로를 방문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벨라센터 주변에는 덴마크 전체 경찰 인원의 절반이 넘는 6000명이 배치됐다. 덴마크 경찰은 필요할 경우 9300명까지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또 만일의 대규모 시위에 대비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창고 건물에 350명을 구금할 수 있는 임시구치소까지 마련했다. 신속한 체포영장 발부를 위해 150명의 경찰간부와 변호사가 그곳에 대기하도록 했다. 벨라센터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3000통의 편지를 보내 수상한 행동을 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덴마크 경찰에 따르면 현재 대규모 시위가 12일과 16일 예정돼 있다. 독일에서 온 극좌 반자본주의 시위대가 참가할 것으로 알려져 경찰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5년부터 매년 열리는 유엔 기후회의에는 요란하고 눈길을 끄는 시위가 늘 발생했지만 폭력사태는 거의 없었다.

코펜하겐 시는 앞으로 2주간 진행될 회의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항에서부터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시내 호텔은 거의 예약이 끝났다. 50km 이상 떨어진 스웨덴 말뫼에도 호텔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회의는 이산화탄소(CO₂) 감축을 위한 것이지만 회의 자체에서 방출하는 CO₂는 스위스가 2006년 한 해 방출한 양보다 많은 4만 t가량 될 것으로 추정된다.

회의 주최자들은 회의 자체를 되도록 친환경적으로 치르려고 노력했다. 회의장인 벨라센터에는 병에 든 생수 대신 일반 수돗물이 생물 분해성 옥수수 녹말로 만든 컵에 담겨 비치됐다. 회의 참석자들이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호텔에서 회의장까지 셔틀버스도 운행하지 않았다. 고위 대표단에는 유기 폐기물에서 추출된 에탄올을 연료로 한 리무진을 제공했다.

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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