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김정일, 굳은 클린턴…北-美 ‘동상이몽’ 한눈에 드러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6일 02시 57분



■ 방북 키포인트 5가지 장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머문 시간은 21시간가량이었다. 만 하루도 안 되는 짧은 방문 동안 외신과 북한 매체에 비친 모습은 미국과 북한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보여준다. 양측의 엇갈리는 기대가 엿보이는 주요 5개 장면을 정리했다.

① 건재 과시한 金… 틈 안보이려는 클린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4일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면담과 만찬을 잇달아 갖는 등 공개 행보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건강 이상을 겪은 그가 이제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미국 측 인사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는 줄곧 미소를 짓기도 했다. 북-미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의 반영이자 이를 국제사회에 선전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는 제스처인 셈이다. 이와 달리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줄곧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소를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방북 목적이 여기자 석방에 한정됐다는 무언의 결의를 다진 것으로 북한 측과 실무적인 절차만을 협의하고 복귀한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셈이다.

②‘오바마 구두메시지’ 누구 말이 맞나
북한 매체들은 5일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구두메쎄(시)지를 정중히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두 차례나 메시지 전달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게 올해 3월이 마지막이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실제로 메시지는 없었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느 누구와도 대화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철학을 인사 차원에서 전달했고 북한은 이를 체제 홍보차원에서 메시지라고 포장했다는 분석이 유력해 보인다. 북한이 그동안 외국 정상의 언급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구두친서’라고 표현했던 전례에 비춰 봐도 ‘구두메시지’라는 이례적인 표현은 구두친서보다 격이 낮은 사실상 간접적인 의사 전달인 것으로 해석된다.

③밝은 표정 여기자들… 극진한 대접 왜
미국 커런트TV 소속 로라 링, 유나 리 기자는 북한에 억류된 지 141일 만인 5일 아침 평양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억류생활로 다소 초췌해 보였지만 각자 가방을 들고 이동할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얼굴엔 안도의 표정이 역력했다. 북한의 판결(12년 노동교화형)대로라면 노동교화소에서 노동을 했어야 하지만 이들은 초대소에 머물며 상당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핵실험 등 각종 도발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이들 인질을 떠올리며 미국과의 고위급 접촉을 기대한 듯하다. 이런 회심의 카드인 여기자들의 건강은 북한이 챙겨줬어야 할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기자들이 미국에 돌아간 뒤 기사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치부를 쏟아내는 부담스러운 상황도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④北군부 만찬 배제… ‘민간국가’ 강조?
김 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에게 베푼 만찬은 명목상 국방위원회가 주최했지만 정작 군부 핵심 인사들은 배석자 명단에서 배제됐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참석자들은 최태복(최고인민회의) 김기남(노동당) 강석주 김계관(내각) 우동측(국방위) 등 5명이다. 국방위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 부위원장인 이용무 인민군 차수는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민군 총정치국 현철해 상무부국장과 김정각 제1부국장(국방위원) 등 군부 실세가 빠진 것은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이 호전적인 ‘병영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 다스리는 보통 나라라는 사실을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⑤김정운 후견인 우동측 참석 의미는
김 위원장이 국방위 소속으로 유일하게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부부장을 참석시킨 것은 예상 밖이다. 우 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매제로서 3남 정운에 대한 승계 작업을 진행하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우 부부장을 배석시킨 것은 이번 행사를 김씨 부자 3대 세습에 활용하려 했다는 해석을 낳는다. 또 우 부부장은 북한 내부의 간첩 색출이라는 체제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김 위원장이 내부 장악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증거로 활용하려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우 부부장은 직책상 이번 여기자 억류 및 조사를 담당한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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