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만류에도 강행… 李대통령 “아쉽다”전화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靑 “울산북 재보선 승산” 보고서 검토중 박희태 대표 불출마 회견

12일 휴가 떠나기전 “판세 검토해보라” 지시

나흘뒤 “선거구도 경제살리기로” 불출마 결심

“안 하는 게 낫겠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6층 대표최고위원 사무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최구식 특보단장, 김효재 비서실장과 다른 참모진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의 4·29 국회의원 재선거 불출마 선언이었다. 일부 참모는 “이번에 출마하셔야 한다”면서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단호했다.

회의 직후 박 대표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결심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 대표가 인천 부평을에 출마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울산 북에 출마할 경우 승산이 있다고 검토하던 중이었다. 박 대표에게서 불출마 통보를 받기 직전의 일이었다. 이 때문에 정무수석실에선 박 대표에게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생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 대표는 이날 아침부터 이 대통령과 불출마 문제를 상의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대통령과 상의 없이 이날 오후 3시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앞서 박 대표는 12∼15일 휴가를 내고 경북 영주와 예천을 다녀왔다. 수행원은 없었다. 부인과 단둘이 떠났다.

박 대표는 20일 기자와 만나 “재선거 출마 여부를 고민하기 위해 휴가를 간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를 떠나기 직전 당직자들에게 울산 북에 출마할 경우 판세를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서는 박 대표와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가상대결에 관한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다. 당 공천심사위에서도 박 대표의 출마를 전제로 선거 구도를 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또 울산 북에 출마했을 경우의 승산에 대해 15일 밤까지도 주변 사람들과 통화하며 수시로 상의했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대표가 울산 북 재선거에 출마하려면 이미 잡아놓았던 갖가지 일정을 수정해야 하는데 14, 15일 일정을 상의하려고 전화했더니 ‘그냥 두라’고 했다”고 전했다.

출마와 불출마 사이를 오가던 박 대표는 최종적으로 불출마를 선택했다.

그 스스로도 “출마하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불출마를 권유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할 만큼 출마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였다.

박 대표는 “내가 출마하면 ‘MB(이명박 대통령)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한 달 동안 정치권에서 거론될 게 뻔하다”면서 “나로서는 엄청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한다는 사실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불출마 선언 후 이 대통령과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박 대표의 불출마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고 다음 기회에 반드시 출마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불출마에는 현실적인 측면도 어느 정도 고려된 게 사실이다.

그는 일단 울산 출신이 아니다. 더욱이 노동자 표가 많은 울산 북에 출마했다가 ‘토박이’인 조 전 의원에게 밀릴 경우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 할 위험 부담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울산 북 여론조사 결과가 박 대표에게 크게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도 그의 결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울산 북 선거구보다는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경남 양산 10월 재선거에 출마하는 게 더 낫다는 현실론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야당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고, 이번 선거를 ‘경제 살리기’ 선거 구도로 방향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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