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이럴려고 본회의장앞 점거했나” 격앙

  • 입력 2009년 3월 2일 03시 00분


새벽 의견접근 김형오 국회의장은 2일 오전 1시 반경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3시간 동안의 협상을 마무리한 뒤 기자들에게 협상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합의사항은 없었다. 단지 의견이 어느 정도 접근됐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새벽 의견접근 김형오 국회의장은 2일 오전 1시 반경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3시간 동안의 협상을 마무리한 뒤 기자들에게 협상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합의사항은 없었다. 단지 의견이 어느 정도 접근됐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 ‘방송법 등 4개 쟁점법안 4개월간 논의후 국회법 절차 따라 처리’

합의처리 시한 없고 표현도 모호 ‘또다른 불씨’

민주는 ‘金의장 직권상정’ 압박 피해 시간 벌어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창조모임의 원내 지도부가 2일 새벽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 아래 미디어 관계법의 처리 문제에 개략적으로나마 의견 접근을 보았지만 여전히 난관은 남아 있다.

○ 잠정 합의 내용과 여야의 득실

여야 3개 교섭단체 원내지도부가 이날 의견을 접근시킨 협상 내용은 디지털전환특별법과 저작권법 등 6개 미디어 관계법안 가운데 큰 쟁점이 없는 2개는 우선 4월 국회에서 처리하고, 이견이 큰 방송법 등 4개 법안은 4개월간 논의 후에 국회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야정 협의를 거쳐 수정할 것은 수정해 처리키로 한 경제관련법에는 금산분리 완화에 관한 은행법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관한 공정거래법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장 최대 쟁점이었던 방송법 등에 관한 해법은 당내에서 큰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논란이 되는 문구는 “방송법 등 4개의 쟁점법안은 4개월간 논의한 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는 대목이다. 합의처리 시한을 못 박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회법 절차’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모호해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협상 후 ‘잠정합의문’ 발표를 거부한 것도 이에 대한 당내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는 이런 잠정합의안이 전해지자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한 당직자는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협상이냐. 고작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본회의장 앞을 점거했느냐”고 격분했다.

당내에서는 이 ‘합의문’대로라면 민주당이 4개월간 논의한 뒤에 문방위 처리와 법사위 처리, 본회의 처리를 순서대로 밟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해도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쟁점법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4월도 아닌 6월까지 방송법의 처리를 미루는 게 과연 현명한 판단이었는지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여야 대표 협상에서 처리시기를 정하면 안 된다고 버텼던 민주당은 김 의장의 직권상정 처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일단 시간을 벌어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김 의장의 중재가 끝난 뒤 “이미 당의 추인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만족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특히 민주당은 방송법 등의 처리 시한을 못 박지 않는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앞서 세 차례의 대표회담에서도 민주당은 공정거래법과 은행법 등 정무위 소관 쟁점법안들과 여당이 요구하는 사회개혁법안 중 일부는 처리에 협조할 수 있지만 미디어 관계법의 처리 시한은 정할 수 없다고 맞섰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

결국 관건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잠정적인 타협안이 각 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될 경우 결국 김 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처리가 수면 위로 다시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 직권상정 압박에 여야 타협점 모색

김 의장은 사실 경제 살리기와 관련된 민생법안과 공정거래법, 은행법 등 경제 분야의 쟁점법안들을 직권상정해 처리하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굳힌 상태였다.

문제는 미디어 관계법이었다.

당초 김 의장은 2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이 상정되면 시간을 두고 좀 더 논의한 뒤 3월이나 4월 국회에서 처리할 생각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기습 상정된 뒤 상황이 바뀌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에선 “이번에 미디어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며 김 의장을 압박하고 나섰고 김 의장도 고민에 빠졌다.

김 의장은 1일 “협상 불발로 직권상정이 불가피해질 경우 이는 여야가 자초한 것”이라며 “야당은 선명성만 내세우려다 가장 크게 소리친 부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의 이런 직권상정 의지 피력은 야당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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