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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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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상 김정일, 후계체제 완성시간 없어
주석제 폐지로 ‘1인 영도’ 기반 허물어져
최근 국내외 일부 언론은 잇달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운 씨(26)가 후계자로 지명됐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에 반론을 펴며 장남 정남 씨(38)를 여전히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는 언론도 있다.
이 같은 보도는 김일성 주석-김 위원장의 부자 세습에 이어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970년대 김 주석의 후계자 승계 과정과 최근 상황을 비교할 때 김 부자의 3대 세습은 현실적 어려움이 많고 명분도 없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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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김 부자의 편이 아니다=‘북한 수령체제의 변화와 수령 승계방식의 한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24일 북한대학원대 박사학위를 받는 이승렬 씨(39)는 단호하게 ‘3대 세습 불가’를 주장한다.
그는 논문에서 “북한 후계체제는 아들 중 한 명이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유일 지도체계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며 김 위원장이 아들 중 하나를 후계자로 키우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뒤 20년 동안 자신의 조직과 사람, 규율을 만든 뒤 1994년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김 주석은 이 기간 아들에게 철저한 후계자 수업을 시켰다.
그러나 당뇨병과 혈관질환 등을 앓고 있는 김 위원장은 그리 남은 생명이 길어 보이지 않는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 일시적으로 회복된 듯 보이지만 지병이 심해 길게 봐도 5년 안에 유고 상태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권에 등 돌린 인민 대중 지지 못 얻어=인민도 김 부자의 편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 대부분이 김 부자의 부자 3대 세습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난 속에서 최대 350만 명의 인민이 굶어죽어간 비극의 책임이 인민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처해온 무능한 ‘수령’과 ‘당’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386운동권 출신인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18일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지난해 이후 대남 공세를 펴는 것은 후계자 지명을 앞두고 간부와 인민들을 단속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체제의 ‘부메랑’ 효과=북한의 개인 독재체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승렬 씨는 논문에서 김 위원장이 스스로 수령체제의 제도적 기반을 무너뜨려 3대 세습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자신이 제도적인 수령이 아니라고 선언했다”며 “따라서 자신이 수령임을 전제로 한 3대 세습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1998년 헌법을 개정해 주석직을 폐지하고 권력을 당과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와 내각 등으로 분산시켰다. 헌법 서문에서 아버지 김 주석이 ‘영원한 수령’임을 명백히 해 자신은 수령의 후계자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이른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내세워 사람의 뇌에 해당하는 수령이 당을 통해 인민 대중을 지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당을 유명무실한 껍데기로 만들었고 선군(先軍)정치라는 이름으로 군부를 강화해 스스로 수령의 제도적 기반마저 약화했다.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에 대비해야=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후계자는 권력기반과 개인적 자질,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세 아들 중 누가 지명을 받더라도 이런 능력이 없다면 아버지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때 함께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후계자 지명은 끝이 아니라 거대한 불확실성의 시작”이라며 “김 위원장이 누구를 지명할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북한 후계체제의 필연적인 불안정성에 대한 준비를 할 때”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