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면]‘실용주의’ 말고 뭐 없나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한미 쇠고기 합의에 항의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대에 밀려 개각을 하고 정국쇄신 의지를 피력했지만 국민의 허탈감은 여전하다. 경제는 초고유가와 물가 폭등으로 암울한 상황으로 치닫고, 통일외교 라인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독도문제 늑장대응으로 정상가동 여부가 의심받고 있다.

李대통령, 뚜렷한 통치이념 필요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과 ‘747’ 경제목표가 물 건너가자 통치의 기치로 내걸었던 실용주의를 벌써부터 접어야 할 상황에 이른 것 같아 안타깝다. 따지고 보면 실용주의는 원래부터 통치이념이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치도 철학도 아니었고 정치적 이념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오히려 실용주의를 너무 강조하고 밀어붙이다 보면 원리나 원칙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혼선과 실책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국제적 정치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국내적으로 실책이 잦아 실망의 늪에 빠진 국민에게 실용주의마저 기치를 내려야 한다면 대통령은 무엇을 내걸고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거는 통치이념의 명분이 뚜렷하고 청사진이 마련돼 설득력이 있다면 국민은 따르게 되어 있다. 적의 공격에 국민이 뭉치듯이 난세 극복을 위해 지도자가 내거는 뚜렷한 대의의 기치에 국민은 따랐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통치이념은 적당히 급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물과 피 끓는 애국심에서 우러날 수 있다. 지도자가 위대한 정치를 하려면 우선 국민을 보듬어 안고 눈물을 흘리고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는 투철한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애국심의 경쟁이다. 역사상 빛을 남긴 정치 지도자는 애국심이 업적만큼이나 빛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난을 몰아내겠다며 독재를 했어도, 아무도 그의 민족중흥 이념을 부인하지 못했다. 이념이 공허하지 않았고, 청사진 아래 구체적으로 달성해 나갈 수 있었고, 국민과 함께 끝내 해냈기 때문이다. 민주화 과정에 공헌한 그 후의 지도자도 다소의 실수를 했지만 국민은 민주화의 기치 아래 따라갔다.

가난을 몰아내고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어낸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을 쏟아야 할 애국심의 대상은 무엇인가? 인터넷에 난무하는 댓글에 식상해하기보다 국민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저러는가, 무엇이 부족해서 저러는가 한번 고심해볼 일이다. 누구나 우러러보고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굳건한 통치이념을 국민의 마음에 심는 것은 오히려 국민이 허탈감에 빠져 있는 지금이 적기일 성싶다.

통치이념으로 아무리 거창한 구호를 내걸어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면 국민은 더욱 허탈감에 빠질 수 있다. 경제를 살려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식의 애매하고 막연한 말로는 국제 경제적 환경이 안 좋은 이때에 오히려 실망에 지친 국민에게 허탈감을 더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믿고 따를 청사진 제시를

빈곤을 퇴치했고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룬 지금, 우리 국민이 바라는 점은 단순한 생활수준의 향상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부문에 팽배한 후진적 요소를 몰아내고, 시들해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 모범적 선진국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건전한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 위에 경제를 재건하고 양심과 도덕이 충만한 가운데 문화가 흥륭하는 모범적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국가의 진로에 대해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며 온갖 생각에 잠겨 있을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언을 해본다.

이상면 서울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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