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작성하려 240만건 기록물 통째로 가져갔을까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13분


‘페이퍼컴퍼니’가 있던 서울 종로구 사무실 D사가 지난해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내수동 사무실. 청와대는 이 회사가 대통령 기록물 반출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을 대신해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을 주문 구입했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페이퍼컴퍼니’가 있던 서울 종로구 사무실 D사가 지난해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내수동 사무실. 청와대는 이 회사가 대통령 기록물 반출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을 대신해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을 주문 구입했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 盧전대통령측 설명 의문점들

[2] 유령회사 왜 동원했나

불법행위 책임론 대두에 대비 가능성

[3] 수만명 인사파일 포함

여권 “퇴임후 정치 영향력 포석” 분석

[4] 盧전대통령은 몰랐나

靑“최고결정권자 허락없이는 어려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시절 생산해 낸 240만 건의 각종 기록물을 퇴임 후 자신의 집으로 왜 모두 가져갔을까.

청와대의 표현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 측은 왜 ‘치약을 짜는 법’과 같은 단순한 매뉴얼 기록 1만6000여 건만 이명박 정부에 넘겨줬을까.

노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을 위해 사본을 가져갔고, 청와대에 관련 자료를 남겨놓을 법적 의무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기록물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가져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있다.

▽유령회사는 왜 동원했고, 별도의 시스템 구입비는 누가 냈나=청와대에 따르면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을 구입한 주체는 당시 청와대가 아닌 외부의 유령회사였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사후 책임론이 대두될 때를 대비해 불법행위의 주체를 당시 노 전 대통령 측이 아닌 제3자로 해놓은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가 유령회사라고 이날 발표한 업체인 D사는 경남 양산→부산→서울로 본점을 옮기면서 등기를 새롭게 했는데 그때마다 자본금은 5000만 원으로 변동이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본금이 2004년부터 4년 동안 5000만 원으로 변동이 없다는 것은 특별한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입한 주체는 유령회사지만 구입 비용을 지불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구입 비용을 1억 원 내외로 보고 있다.

▽왜 그 많은 자료를 모두 가져갔나=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만 명의 인사파일 등이 포함된 자료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구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면서 “단순히 인터넷에서 상왕 노릇을 하는 정도가 목표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결정적 자료들을 근거로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의 결정적 비리를 새 정부가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어책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재기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 개설과 기록물 반출이 미묘한 시점에서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은 “일방적인 정치공세”라며 기록물 반출은 회고록 작성을 위한 임시적 조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사전이나 사후 보고를 받았나=청와대의 주장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 측이 기록물을 옮겨 간 것 자체가 불법이다. 이 경우 노 전 대통령이 이런 불법 행위에 어느 정도 관여됐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는 반출 이전이나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의 중요한 기록물을 옮기는 데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허락 없이 가능하겠느냐”면서 “게다가 봉하마을 사저에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이 설치되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직접 사용하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반출과정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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