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감축보다 북미관계 정상화 우선”

  • 입력 2008년 6월 6일 02시 53분


“영변 핵시설 해체 대가로 경수로 원해”

■ 프리처드 KEI 소장이 전하는 북한의 속내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 4일 오후 미국 워싱턴 KEI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미국과의 북핵 협상에 대한 북한 측의 속내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에 보고했다는 4월 방북 결과 보고서를 들고 나와 "정곡을 찌르는 구체적인 질문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자신이 전하는 북한 속내의 근거는 박의춘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이근 미주국장과의 면담 대화록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북측 6자회담 관계자'의 말이라며 "북한은 핵 폐기 단계인 3단계 협상의 대상은 영변 핵시설만이고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북한의 3대 요구?=프리처드 소장은 "북측 인사들은 '미국이 핵 보유국인 북한에 익숙해져야 하며 완전한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진 후에야 핵 보유고 감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북측은 나아가 "비공인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이 미국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며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겠느냐"라고 주장했다는 것.

이어 프리처드 소장은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한 핵 협상은 영변 핵시설 해체 대가(quid pro quo)로 경수로를 제공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측은 금호지구의 경수로 용지를 활용하면 3년 내에 완공이 가능하고 핵시설 해체 역시 3년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핵 확산 의혹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미국의 핵 확산 주장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전혀 상식에 통하지도 않는다'며 선적서류 등 진짜 증거(real proof)를 내놓으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밖에 프리처드 소장은 "북측에 플루토늄을 추출,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기 위한 시설인 플루토늄 금속화 가공시설(metal fabrication facility)이 신고대상에 포함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영변에 없는 시설은 포함되지 않는다. 나중에 논의할 문제'라고 답했다"고 했다.

▽북한의 진짜 속내는?=2000년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과 2002년 2차 핵 위기의 시작을 알렸던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 방북에 동행했던 프리처드 소장은 이번 북한의 '속내 고백'이 새로운 위기의 시발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일종의 협상전략 차원의 언급으로 볼 수도 있고 실제로 '외부의 위협'에 대한 억지용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북한의 논리상 체제 위협이 사라지기 전까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리처드 소장은 2000년 올브라이트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을 때 김 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 역시 외부의 위협(external threat)이 사라진 다음에야 가능했다고 발언했던 사실도 상기시켰다.

프리처드 소장은 "핵 무기는 북한이 가진 일종의 '최후의 협상수단'"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다만 그는 "핵 신고 단계에서 UEP나 핵 확산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다음 정부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한 정부 각성하라?=한편 프리처드 소장은 북측인사들의 남측에 대한 불만도 일부 전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북측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측의 태도에 대해 '어린 동생 가르치려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며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과장해서 말하는 워싱턴 전직관료의 돌발행동' 이라는 식으로 폄훼했던 미국 국무부의 평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방북 직후 정식계통을 밟아 정부에 모든 결과를 상세히 보고했으며 공개된 세미나장에서의 발언은 이후 33일 이상이 지난 뒤의 일"이라며 "책임 있게 행동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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