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20분 거리 경내 오가며 ‘카트 회담 90분’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李대통령은 훌륭한 운전자”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근교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골프 카트로 이동하고 있다. 캠프데이비드=이종승 기자
“李대통령은 훌륭한 운전자”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근교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골프 카트로 이동하고 있다. 캠프데이비드=이종승 기자
캠프데이비드 1박 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외가 예상보다 더 배려해 주고 정성을 보여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오후 미국을 떠나기 직전 워싱턴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부시 대통령 부부와 함께 보낸 시간을 소개하며 “깜짝 놀랐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메릴랜드 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이 대통령 부부는 어떤 대접을 받은 걸까.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설명, 미 행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카트에서 나눈 환담=18일 오후 4시경 이 대통령 내외가 헬기편으로 도착하자 부시 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헬기 앞까지 걸어왔다.

두 정상 부부는 4인승 골프카트에 함께 탔다. 한국 측은 당초 헬기장에서 숙소인 캐빈까지 카트로 이동한 뒤 만찬 때 다시 만나는 일정을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두 정상은 1시간 반 동안이나 카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카트를 운전하던 부시 대통령이 “You want to drive?(운전해 보겠느냐?)”라고 하자 이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Yeah, Can I drive?(내가 운전해도 되나?)”라며 운전대를 넘겨받기도 했다. 취재진 앞을 지나면서 부시 대통령은 “He is afraid of my drive(이 대통령은 내가 운전하는 걸 염려한다)”라고 농담했고 이 대통령은 “He is a guest(부시 대통령이 손님이다)”라고 맞장구쳤다. 부시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Fine driver(훌륭한 운전자)”라고 말했다.

캠프데이비드 내 카트용 도로는 걸어서도 20분이면 끝이 보일 정도의 길이. 그런데도 두 정상은 이 길을 여러 차례 오가며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은 아침에 조깅하는 길고 짧은 코스들을 일일이 다 설명했다.

뒷자리에 탔던 영부인들이 내리고 통역이 올라탔지만 통역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두 정상은 쉬지 않고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가족모임 같은 만찬=오후 6시 반경 시작된 만찬에는 한국 측에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김병국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미국 측에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만이 배석했다.

메뉴는 로라 여사 측이 미리 청와대에 타진하고 이 대통령이 화답(본보 19일자 A5면 참조)한 대로 쇠고기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해서 생선요리가 나왔다. 로라 여사가 모든 메뉴를 직접 고르고 좌석 배치, 테이블보까지 챙겼다는 말에 이 대통령 내외는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1시간 반가량 이어진 한미 정상 간 첫 프라이빗 디너(사적인 만찬)에서도 많은 대화가 오갔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방한해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함께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내외를 언급하며 “그때 청와대에서 부모님이 이 대통령 내외와 찍은 사진을 이곳에 전시해 뒀다”고 소개했다.

만찬에 앞서 두 정상 내외는 칵테일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한국의 대선일이 이 대통령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 대통령의 ‘특별한 날’을 화제에 올렸다.

▽캐빈=만찬이 끝난 뒤 부시 대통령 내외는 이 대통령 부부의 숙소인 ‘버치캐빈’까지 걸어서 배웅했다. 버치캐빈과 부시 대통령 내외의 캐빈은 2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캐빈마다 카트와 자전거가 준비돼 있었지만 이 대통령 내외는 만찬 뒤 경내 곳곳을 걸어서 산책했다.

부시 대통령도 수행원 없이 혼자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돼 한국 측 수행원들을 놀라게 했다. 19일 아침엔 혼자서 애견 바니를 찾아다니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첫날 카트 위에서 1시간 반, 만찬 1시간 반, 이튿날 정상회담과 오찬 2시간 반 등 두 정상은 1박 2일 21시간여 동안 5시간이 훨씬 넘게 얘기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특파원 간담회에서 “보통 손님 접대는 동양 사람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와서 보고 ‘우리도 외국 국가원수가 오면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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