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대사에게 듣는다]<3>닝푸쿠이 주한 中대사

  • 입력 2008년 4월 3일 03시 01분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닝 대사는 “한중일 교류 확대를 위해 3국 간 정상회담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닝 대사는 “한중일 교류 확대를 위해 3국 간 정상회담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운데)가 2006년 6월 독일 월드컵 때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붉은악마 옷을 입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제공 주한 중국대사관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운데)가 2006년 6월 독일 월드컵 때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붉은악마 옷을 입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제공 주한 중국대사관
“6자회담 성공하려면 北-美의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은 분단되어 있지만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으로 하나입니다.”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는 ‘준비된 주한 대사’다. 오랜 북한 생활과 한반도 담당 업무로 남북한에 모두 정통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 통일의 실현을 위해 남북이 더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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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이틀 전(3월 24일) 베이징(北京) 올림픽 성화 봉송이 시작됐다. 올림픽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이는데 준비는 잘되고 있나.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경사다. 37개 경기장 중 36개가 완공됐고 주경기장은 4월에 완공된다. 베이징의 환경과 교통도 꾸준히 개선해 올림픽 기간 중 대기오염 지표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도달할 것이다.”

―서울 구간 성화 봉송 주자로 나온다는 한류 스타는 누구인가.

“5대륙 19개 도시를 도는 성화는 4월 27일 서울에 도착한다. 한국인 성화 봉송 주자는 결정되어 있지만 말할 수 없다.”

―올해는 중국의 개혁개방 30년이 되는 해다. 중국의 정치 경제 발전 과정에서 개혁개방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30년간의 탐색과 실천을 통해 우리는 활력이 넘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이뤘다. 국내총생산(GDP)은 1000억 달러에서 3조 달러로, 수출입 총액은 200억 달러에서 2조1000억 달러로, 외환보유액은 8억 달러에서 1조5000억 달러로 늘었다. 세계 4위의 경제로 발전했다. 200달러가 안 되던 1인당 GDP는 2007년 2600달러가 됐다. 이제 ‘상품 부족 시대’에 작별을 고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3월 1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때 올해 중국 경제가 가장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고 중국 증시와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경제가 엄준한 도전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국내외적으로 불안요소가 크다. 하지만 적절하고 기민한 대응과 지속적인 구조조정, 내수 주도 경제, 창의력에 의한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최근 발생한 티베트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평화시위가 아니라 심각한 폭력 범죄 활동이다. 달라이 라마 집단이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한 폭력 분열 활동이라는 증거가 있다. 티베트는 분할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이는 국제사회의 공통 인식이다.”

―3월 22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당선됐다. 중국과의 교류 확대를 주장해온 마 후보의 당선으로 양안 관계는 변화가 있겠는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민심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완전통일 그리고 중국의 핵심이익과 관련된 사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어떤 형식의 ‘대만 독립’ 분열 활동도 반대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과 일본 관계가 개선되는 데 비해 한중 관계는 다소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

“한 국가와의 관계 강화가 다른 국가와 소원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중-한 관계는 매우 좋다. 이명박 정부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실질적인 조치를 통해 양국 관계를 진일보시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해이다. 양국 정상도 여러 차례 회담을 갖는다.”

―한국 중국 일본 3국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일인데 잘되겠는가.

“국제회의에서 3국 정상이 만나는 일은 있었지만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은 별도로 만나자는 것이어서 의미가 다르다. 3자 회담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 및 한중일 교류협력 강화에도 유익할 것이다. 중국도 3국 간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박근혜 특사가 방중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만나 양국 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격상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양국 지도자와 정부가 두 나라 간 관계 격상에 공동인식을 갖고 있다. 전면적 동반 협력자 관계의 격상은 두 나라의 이익에 부합한다. 앞으로 ‘실질적인 행동’으로 양국 국민이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행동을 통해 관계가 격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협상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중국은 (6자회담에서) 중재자가 아니라 의장국일 뿐”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라는 취지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화 채널로 어려움도 있었으나 적지 않은 진전을 이뤘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6자회담 각국의 의지와 방침은 확고부동하다고 본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무게와 역할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기본적 해결 키는 미국과 북한에 있다고 생각한다. 키를 쥐고 있는 측에서 이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융통성을 갖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평양과 서울 양쪽에서 오래 살아 남북한 사정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남북한 관계에 대해 조언한다면….

“남북은 분단되어 있지만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으로 하나다. 분단은 남북 모두에 비극이다. 1000만 이산가족이 지척에 있으면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남북의 공동 노력으로 인적 경제적인 협력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 이런 교류 확대와 남북 관계 개선은 통일의 기초가 될 것이다.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 통일의 실현을 위해 남북이 더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

―북한이 중국식 개방을 할 수 있을까.

“각국은 자국만의 실정이 있다. 주변 국가들이 중국 모델을 따라 하기보다 세계 글로벌화 추세에 맞춰, 그리고 지역 공동발전과 자기 나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실정에 맞는 대외 개방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무단철수’(야반도주)하는 일이 있었다. 기업의 책임도 크지만 중국의 기업청산 절차가 미비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재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은 4만6000개 정도다. 대부분 수익을 올리고 있고 손실을 보는 기업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무단철수’하는 기업은 그중에서도 극소수다. 경영 부실로 도피하는 기업도 있지만 일부는 중국 정책의 빈틈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도피한다. 이는 불법이며 한국 기업의 신의와 명예를 해치는 행위다.”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 주변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이 중국 정부의 협조로 추진 중인데 잘 진행될 수 있을지….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은 물론 중국 국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분이다. 힘닿는 대로 발굴 작업을 도울 것이다.”

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닝푸쿠이(寧賦魁)

△톈진 출생(53세)

△1973∼1977년 김일성대

조선어문학과

△1977∼1982년 주북한 중국

대사관 서기관

△1983∼1990년 중국 외교부

본부

△1991∼1995년 주북한 대사관

참사관

△1995년 7월∼2000년 4월

외교부 아주국 동북아 사무

담당 부국장

△2000년 4월∼2003년 10월

주캄보디아 중국대사

△2003년 10월 한반도문제 전담

대사, 6자회담 참석

△2005년 9월 주한 중국대사

▼ “中 외교부 최고 한반도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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