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한입 두말’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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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시스템 상으로 가장 안정된 정부다. 권력기관도 법적인 권한 범위 안에서 정책적으로 일하고 있다.”(참여정치실천연대 특강·2006년 11월 12일)

“우리는 이명박과 유착하여 수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검찰을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할 것이다.”(‘정치검찰-이명박 유착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2007년 12월 9일)

‘BBK 의혹사건’ 수사 결과 발표 뒤 검찰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발언이 과거 검찰에 관해 언급했던 내용과 판이해 “같은 정권에서 벌써 생각이 바뀌었느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1년 전에는 “자율성 존중한다”더니=이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 12일 한국토지공사 대전연수원에서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련) 회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권력기관이 이제는 불법적인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다. 자기가 가진 법적인 권한 범위 안에서 정책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들이 정치 중립을 지키고 투명한 일처리를 하게 됐다는 것은 이 전 총리를 비롯한 현 정부 인사들이 업적으로 내세운 ‘단골 메뉴’였다.

이 전 총리는 당시 강연에서 “3년 반 동안 이런 분위기를 형성했는데 다시 회귀하려 하면 말할 수 없는 저항을 받을 것이다. 일정 수준에 올라온 역사는 퇴보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이 전 총리는 “검찰이 BBK 수사를 왜곡하고 조작했다”며 진상규명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전례 없는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까지 주도했다.

참정련 강연에서 “(현 정부는 권력기관을) 다른 방향으로 틀고 싶어도 그렇게 못한다. 그 기관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던 이 전 총리는 4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80여 명과 함께 검찰을 항의 방문했다. 5일 의원총회에서는 “전직 총리와 국회의원 80명이 가서 그 정도로 얘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라며 검찰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2002년에는 본인이 ‘정치검찰’ 도운 의혹=검찰 주변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전 총리가 정치권과 검찰 유착 의혹을 제기하는 건 아이러니”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던 이 전 총리 본인이 검찰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해 8월 21일 이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병풍 사건 담당 검사였던 박영관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그해 3월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 씨 병역면제 의혹 수사를 결심했다는 말을 하면서 “그쪽에서 ‘대정부질문 같은 데서 떠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가 “뭐가 있느냐고 했더니 당시 ‘그쪽’에서 ‘정연 씨의 병적기록표가 엉망이고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등이 있다’는 사실을 귀띔했다”고 전했다.

듣기에는 수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관련 자료를 받았다고 해석되는 내용이었다. 이 전 총리의 발언은 이른바 ‘역(逆)병풍 의혹’으로 확산돼 정치권에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그쪽’에 대해 “검찰이나 군 관계자는 아니다. 수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렸다.

같은 해 10월 25일 검찰이 김대업 씨의 테이프는 조작됐고, 대책회의도 없었다고 결론 내리면서 병풍 수사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의 발언에 얽힌 진상이 무엇인지는 가려지지 않고 넘어갔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표변한 그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다”며 “언젠가는 5년 전 이 전 총리가 한 발언의 진상이 가려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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