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과 정 후보 애증의 10년

  • 입력 2007년 10월 15일 18시 53분


코멘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오랜 정치인연을 통해 '애증의 관계'를 쌓아왔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의 집권여당 의장, 통일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권력의 제2인자', '황태자'로 불리며 당내 라이벌이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는 달리 노 대통령과 끈끈한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해체기에 '대통령과의 차별화'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노 대통령과 소원한 관계로 돌아서고 만다.

연말 대선까지 앞으로도 후보단일화 등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범여권 내부에서는 '현재 권력'인 노 대통령과 '미래 권력'을 노크하고 있는 정 후보간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느냐가 대선향배와 일정부분 함수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노 대통령의 총애… 밀월관계 = 두 사람의 인연은 98년 종로 재·보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선의원인 정 후보는 부산에서 낙선한 뒤 종로에 출마한 노 대통령 지원유세에 적극 나서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정치적 노선의 차이를 보인 적도 있다. 2001년 당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국민의 정부 '권력 2인자'였던 권노갑 씨를 정조준하고 정풍운동을 펼쳤을 때, 소장파인 노무현 최고위원의 동참을 요구했지만 노 최고위원은 "대통령과의 차별화 방식에는 반대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업그레이드되고 공고화된다.

당시 경선후보로 나선 정 후보는 '경선지킴이' 역할을 자임하며 국민 경선의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노풍'(盧風)을 불러일으키는 일익을 담당했다. 그뿐 아니라 경선패배 후에는 "대선 승리의 밀알이 될 것"이라며 승복했고, 대선 과정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노 대통령은 대선 과정은 물론 대통령 당선 후 정 후보를 각별히 배려했고, 차세대 지도자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정 후보를 중용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2002년 대선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 21 대표가 노 대통령과의 공조 파기를 선언한 것도 노 대통령이 정 후보를 차기 지도자 반열에 올려놓은 발언이 한몫 했을 정도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분이 있다. 하지만 너무 속도위반하지 말라… 추미애가 있다… 또 정동영 고문은 어떠냐…"라며 정 후보를 띄웠다.

이 같은 정 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은 대통령 당선 이후 계속된다.

당선자 신분이던 2003년 1월 자신을 대신해 정 후보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대표로 파견했고, 그해 7월 런던에서 열린 '제3의 길 정상회의'에도 대신 참석하도록 하는 등 국제외교무대 데뷔무대를 마련해 줬다. 정 후보는 통일부장관 시절이던 2005년 1월에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다.

정 후보는 참여정부 출범 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당 의장을 맡았고, 17대 총선 완승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하게 '참여정부 2인자'로 부상했다. 2004년 6월 통일부장관으로 입각해 각료로서 국정운영의 경험을 쌓는 이른바 '대권수업'까지 하게 된다.

노 대통령은 특히 당시까지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맡고 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자리를 정동영 장관에게 넘기면서 정 후보가 외교안보분야를 총괄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사실상의 '통일부총리'로 예우한 것이다.

특히 정 후보는 2005년 6월에는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8월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 때 정 후보를 언급하며 "특히 대북정책부문에서 정동영 장관이 잘 보좌해 가고 있다"고 신뢰를 표시했다.

◇탈(脫) 노무현 움직임… 차별화 본격화 = 노 대통령과 정 후보간의 '2인3각'과도 같은 끈끈한 관계는 2006년 1월 정 후보가 장관직에서 물러나 당으로 돌아가면서 균열 조짐을 보였다.

정 후보는 당의장으로 복귀한 후 참여정부 실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脫) 노무현'을 시도하면서 둘 사이에 놓인 레일은 궤도가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의 사립학교법 재개정 요구에 반발했고 7월 서울 성북을 재보선 출마 요구도 뿌리쳤다.

지방선거 참패, 재보선 패배 등 잇따른 여당의 선거 패배 속에서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틀을 깨는 신당창당, 정계개편의 흐름에 몸담으면서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노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정 후보는 본격적으로 대권 행보에 나서면서 지난해 연말과 올해 연초 "대통령이 정치에 올인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대통령이 옆으로 비켜서 있는 게 새 질서에 도움이 된다"며 노 대통령의 정치 불개입을 촉구했고, 노 대통령이 결정한 대북송금특검, 대연정 제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이런 와중에서 올해 4월27일 노 대통령과 정 후보는 청와대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고, 둘 간의 대화 내용이 정 후보측으로부터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양측의 결별은 기정사실화됐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 진의가 잘못 알려졌다는 점 때문에 정 후보측의 '언론플레이'에 진노했고, 이에 맞서 정 후보측에서는 청와대에 이른바 '정동영 죽이기 TF'(태스크포스) 구성됐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노 대통령은 며칠후(5월7일) 열린우리당 해산과 당 경선참여 포기를 선언한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을 겨냥, "과연 당신들이 열린우리당 창당선언문을 낭독한 사람들이 맞느냐. 그것이 도리에 맞는 정치냐"라며 '구태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정 후보는 이튿날 반박글을 통해 "독선과 오만에 기초한 권력을 가진 자가 휘두르는 공포정치의 변종"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맞섰다.

둘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비춰졌고, 이후 노 대통령은정 후보를 "원칙없는 기회주의자들"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이에 맞서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의 경선개입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이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은 끝이 났고, 정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악화된 노 대통령과 정 후보의 관계가 당장 복원될 것이라는 관측은 낮은 편이다.

물론 경선후 친노(親盧) 세력을 끌어안으며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정 후보 입장에서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복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고, 현재의 대선구도에 비춰 공멸도 피해야 하는 만큼 '정치는 현실'이라는 금언에 따라 양측에서 변화의 시도는 모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승리'보다는 '원칙'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가 두 사람 관계가 변화될 지 여부의 관건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