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혁신정부’ 자료실의 만화책과 소설책

  • 입력 2007년 10월 2일 03시 02분


정부 부처 자료실에 취미생활이나 재테크용 실용서적과 소설책 만화책 등 공복(公僕) 업무와 관련이 없는 책들이 쌓여 있다. 각 부처가 정책 개발 등 대(對)국민 행정서비스에 도움이 될 자료를 구입하도록 돼 있는 예산으로 이런 책들을 사들인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성호 의원이 정부 38개 부처 자료실의 2006∼2007년 도서 구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구입 도서 4만515권 가운데 업무와 무관한 도서가 절반에 가까운 2만25권이나 됐다. 38개 부처 중에서 17개 부처는 비업무용 도서를 절반 이상 구입했고 대통령비서실, 방위사업청, 중소기업청, 외교통상부 등 7개 부처는 만화책도 143권을 샀다. 전체 도서 구입 예산 7억9735만 원의 26.6%에 해당하는 2억1242만 원이 비업무용 도서 구입에 사용됐다.

워낙 통이 큰 정부인지라 ‘그까짓 몇억 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을 짐작할 수 있다. 부처 자료실을 보면 정부가 국민 세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공무원 기강이 어떤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일부 자료실 담당자는 “문학서적도 직원들의 정서 함양에 유용하므로 업무와 연관이 있다. 개인 용도의 책을 사는 것이 아닌 한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궤변에 능한 정권 아래서 공무원들도 물이 든 것인가. 차라리 ‘문예 진흥, 만화가 격려라는 깊은 뜻에서 소설과 만화도 구입했다’고 둘러대지 그러는가. 정서 함양을 위한 책이라면 개인이 사비로 구입하든가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일이다.

물론 정부의 도서 구입 예산은 전체 나라살림(올해 예산 238조 원)의 극히 일부다. 그러나 이런 예산 오남용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상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최근 ‘검은돈, 눈먼 돈, 새는 돈을 막아 국가예산을 연간 10조 원 이상 절감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말만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예산 누수를 최대한 막을 수 있다면 민생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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