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접촉 제한’ 부처별 내규는 안바꿔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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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설전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안의 수정안을 발표하는 도중 박상범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기자와 설전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안의 수정안을 발표하는 도중 박상범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취재통제’정부 훈령 수정안‘눈 가리고 아웅’

국세청 등 민생부처 기자실 폐쇄방침은 여전

브리핑룸 아닌곳 방문땐 별도 출입증 받아야

협의진행중 일방발표… 金처장 “정부 최대한 양보” 주장

한나라 “짝퉁 대책”… 민주 “알권리 차단 본질은 그대로”

정부가 14일 내놓은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조치의 수정안은 그동안 언론계를 비롯해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이 제기한 비판과 지적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지만 여전히 언론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눈 가리고 아웅’식 수정안=국정홍보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던 총리 훈령 11조와 12조를 삭제했기 때문에 정부안이 취재통제안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리 훈령에서 △취재시 공보관실과 사전 협의, 사후 보고(11조) △면담 취재는 지정된 장소만 이용(12조) 조항이 삭제됐지만 각 부처의 내규 혹은 장관 구두지시 사항에 비슷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기자 접촉 기피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별위원회는 관련 내규의 삭제, 취재를 거부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욱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식약청, 국세청, 기획예산처 등 독립청사에 있었던 기사송고실을 폐쇄하겠다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됐다. 정부가 강행할 경우 기자들의 출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들 부처는 감시의 사각지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또 기자 등록을 사실상 의무화한 총리 훈령 20조에 ‘기자가 등록을 요청하는 경우’라는 문구를 넣어 선택사항으로 바꿨다. 그러나 기자가 정부청사 내 통합브리핑센터를 벗어나 사무실 등을 방문할 경우 방문자를 기재하고 별도의 출입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장하는 ‘자유로운 취재환경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자들을 한 군데로 몰아넣겠다고 하는 건 잘못된 발상이다. 오히려 곳곳에 기자실을 만드는 게 취재와 정부 홍보 모두에 효율적”이라며 “기사송고실과 브리핑룸을 통폐합하는 것은 취재 제한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지화’ 요구는 의견이 아니다?=정부는 수정안 마련 과정에서 언론계와 시민단체, 정치권의 의견을 ‘전면 수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듣고 싶은’ 의견만 수렴했다.

홍보처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경우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치권의 경우 대통합민주신당의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대표기구인 기자협회나 정부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의 의견은 참고도 하지 않은 것.

김창호 홍보처장은 ‘왜 대통합민주신당의 의견만 반영됐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른 정당의 요구사안은 정치공세에 가깝고 합리적인 제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발표는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와의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져 기자들의 반발을 샀다.

김 처장은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논의하면서 컨센서스가 이뤄졌고 언론계 의견도 수렴했다”며 “기자협회의 경우 건설적 대안을 내놓으면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답변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박상범 기자협회 특위위원장은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박 위원장은 또 수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을 했으나 김 처장은 “이곳은 특정단체 관계자가 시위하는 곳이 아니다. 박 위원장은 취재기자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을 받을 수 없다”며 답변을 한때 거부하기도 했다.

▽정치권 반응=각 정당은 대체로 ‘땜질식 처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수정안과 대동소이한 중재안을 13일 발표했다가 ‘짝퉁 청와대안’이란 비판을 받았던 대통합민주신당은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핵심 쟁점인 브리핑룸 통폐합에 대해 여전히 ‘기왕에 한 공사를 어쩌겠느냐’는 자세다. 본질을 외면한 ‘수박 겉핥기 식 짝퉁’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기자들의 취재에 불편을 주는 요인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그 점에 대해 정부가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정부가 헌법적 가치인 언론자유에 대한 철학 없이 언론을 규제하려다 보니 수정안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알 권리 차단이라는 본질은 같다”고 꼬집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기자협회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17일 규탄집회”▼

14일 발표된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수정안에 대

해 언론계에선 일부 독소조항이 폐지되긴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

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별위원회 박상범 위원장은 정부

의 수정안에 대해 “여전히 기만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상당수 정부 부처가 공보관실을 경유해 공무원

을 접촉하도록 하는 내규가 있어 총리 훈령을 없애도 취재 제한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며 “취재 기피 공무원을 제재하는 조항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출입증으로 정부 청사를 출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절차가 복잡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는 곧 협회 부회장단, 시도협회장단, 서울지역 지회장

단, 특위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1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정부의 안을 규탄하는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유일상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정부가 브리핑룸을 통합하

는 것은 언론을 기자회견과 보도자료에만 의존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각 부처에 있는 브리핑룸은 언론 취재의 다양성을 보장해 주는 장치로 획일화된 기사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박효종(서울대 교수) 공동대표는 “일부 개

선된 점은 있어도 정부 안은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권력의 횡포이므로 백지화 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과천청사 예산안 브리핑 예산처 기자단 취재거부▼

기획예산처 출입기자단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예산처가 2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시할 예정인 내년도 예산안 브리핑 취재를 거부하기로 했다.

예산처 기자단은 14일 이번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이 현 정부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취재통제안에 따른 것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이날 찬반 의견 조사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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