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한미정상회담 해프닝’ 정부 발표만 썼다면…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7월 중순 미국의 지인에게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한미 간 견해차가 크지만 (이런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비핵화 완성 전에는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말이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속사정을 잘 알 만한 인사였기에 이 말을 그냥 흘려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워싱턴에서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울의 동료 기자를 통해 2명의 정부 당국자로부터 부분적인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취재된 내용은 본보 7월 27일자 A3면에 보도된 바 있다.

7일 오후 호주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회담(55분간 진행)이 끝난 뒤 열린 양국 대통령의 언론회동(15분간 진행)은 물밑 기류로만 이해하고 있던 워싱턴과 서울의 온도차를 확인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비핵화 확인 후 평화조약’이라는 원칙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였고, 부시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말해 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청와대가 회담 직후 내놓은 평가는 예상대로 장밋빛이었다. “8차례의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럴 즈음 외신에서 “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미국 대통령을 압박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청와대 대변인은 관례를 어겨 가며 “비공개 회동 때 부시 대통령의 발언도 알려 드리겠다”면서 비슷한 기사의 차단에 주력했고, 이튿날 신문은 대체로 이 사안을 ‘해프닝’으로 전했다.

이 상황을 보면서 기자가 떠올린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취재 선진화’가 초래할 암담한 결과였다.

정부 방침에 따라 기자가 대변인실을 통해 신고를 한 후 공직자와 만나면 그 공직자는 얼마나 진실에 입각해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정부가 인터넷에 올리는 자료와 홍보논리 이외의 실제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가운데 정부 홍보책임자가 제공하는 교묘한 홍보 논리의 맹점을 기자가 파고들어 가기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비판적 보도가 줄어드는 만큼 지지율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정치권력은 이 같은 조치의 수혜자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결정에 삶을 맡긴 국민도 과연 수혜자일까.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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