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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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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계자는 탈레반 무장단체가 30일 오후 4시 반, 8시 반(한국 시간) 두 차례 협상시한을 연장한 끝에 또다시 이틀을 늘린 데 대해 “협상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이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사태 해결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29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만났는데도 이날 밤 12시까지도 피랍 사태가 해결의 가닥을 잡지는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 듯 노 대통령은 30일 오후 제14차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피랍자들의 안전과 조속한 석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강화하고, 아프간에 있는 백 특사는 2, 3일 더 머물며 활동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말고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오라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5일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둔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2차 면담 추진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카드’가 없다?=특사가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옵션에서 제외한 상태에서 정상외교에 준하는 최고위급 교섭을 펼쳤지만 사태 진전을 끌어내지 못하자 정부는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제는 “인질을 풀어 주는 것이 이슬람 율법에 맞는다”는 식의 도덕적 접근 외에 협상 카드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동문제 전문가는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남아 있지만 정부의 초반 대응이 탈레반 무장세력의 기대감을 부풀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백 특사의 카르자이 대통령 면담도 즉각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프간 정부가 이번 사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인 탈레반 죄수 석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사태 발생 초기 탈레반이 제시한 ‘협상 데드라인’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던 정부 당국자들도 “새로운 데드라인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스스로 협상 입지 좁힌 정부=고비 때마다 정부가 보여준 대응이 오히려 협상의 입지를 축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피랍 사태 발생 직후 탈레반 무장단체 측은 21일 오후 4시 반이라는 시한을 정해 한국군이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인질을 살해하지 않는다면 철군은 물론 무장단체와의 직접 협상에도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철군 요구는 탈레반의 진정한 요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정부는 그들의 게임에 말려든 셈이 됐다.
탈레반 측은 22일 “무력 동원 시 인질을 죽이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일부 언론이 군사작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한 직후였다.
인질의 희생을 우려한 정부는 즉각 “한국 정부의 동의 없는 군사작전은 없다”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탈레반이 가장 두려워하는 군사작전에 대한 안전판을 제공하는 역효과를 냈다.
탈레반은 25일 배형규 목사 피살 이후 정부가 백 실장을 특사로 파견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정부를 통해 아프간 정부를 압박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수감자 석방을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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