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 활동 인정 받았는데…” 철수 요구에 정부 당혹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여기가 피랍 장소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에 한국인 21명이 납치된 것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에서 현지 지도를 들여다보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가 피랍 장소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에 한국인 21명이 납치된 것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에서 현지 지도를 들여다보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1명을 납치한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프간에 파병된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처형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20일 알려지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납치세력이 이런 요구를 했는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새로운 현지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수차례 긴급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책 마련에 부심=아프간 무장세력이 동의 ·다산부대의 24시간 내 철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자 국방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이날 상황대책반을 통해 아프간 무장세력의 정확한 요구조건과 현지 상황 파악에 주력하는 한편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군은 아프간 무장세력들의 석방 조건이 ‘아프간에서 한국군 철수’로 확인될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동의·다산부대의 조기 철군 여론이 비등할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 때문.

국방부 관계자는 “의료부대인 동의부대와 공병부대인 다산부대는 그동안 재건사업과 의료지원 등 인도주의적인 활동으로 아프간에서 인정을 받아왔다”며 “24시간 내 철군하라는 요구가 사실이라면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의·다산부대의 그간의 활동을 외교채널을 통해 아프간 탈레반 세력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설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탈레반의 요구에 대해) 피랍자들의 인권과 동의 다산부대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 차원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의·다산부대는 이번 사건에도 부대 방호태세를 평상시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으나 부득이하게 외출하는 장병에 대해서는 만반의 경호태세를 갖추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신이 보도한 탈레반의 요구사항과 인질 처형 경고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 중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줄 수는 없다”며 “외신에서 보도되고 있는 여러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언론에) 알려드릴 게 있으면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납치된 한국인들은 아프간 가즈니 주 인근에 억류돼 있으며 아직까지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탈레반의 요구사항이 전해진 직후 조중표 외교부 1차관 주재로 관계 대책 회의를 잇달아 열고 현지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아프간 정부 관계자들과 수시로 연락을 하며 납치세력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정오까지 철군 안하면 처형”=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20일 AP통신과의 통화에서 “그들(한국)은 내일(21일) 정오까지 아프간에서 그들의 군을 철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 18명을 처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로서는 그들(한국인)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탈레반이 18일 납치한 2명의 독일인도 붙잡고 있으며, 아프간에서 독일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이들도 처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대상으로 대 테러전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에 철군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납치를 자행했음을 밝힌 것이다.

이번 탈레반의 요구는 이례적으로 짧은 시한 설정이다. 이는 지금까지 탈레반이 외국인을 납치한 뒤 석방 혹은 처형까지 걸린 시간이 보통 3, 4주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다.

다만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국인 납치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세운 탈레반 무장 세력들은 운전사 등을 상대로 “왜 한국인이 이렇게 많이 타고 있느냐” 등 전후 상황 파악을 위한 질문들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강후원 영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프간에서는 최근 정치적인 목적에 따른 자살폭탄테러와 외국인 납치 살해 사건이 수도 카불 인근을 비롯해 아프간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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