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10일 “정부가 기자협회를 포함한 언론단체와 논의를 계속해 왔는데도 기자협회는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며 “성의를 갖고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협회는 지난달 노 대통령과의 TV 토론 과정에서도 참여 여부를 놓고 적지 않은 내홍을 겪었다. 정부가 협의했다는 언론단체에 기자협회가 포함됐더라도 기자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
기자협회가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전국 언론사 기자 3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부가 발표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48.2%가 ‘절대 반대’, 42.5%가 ‘반대하는 편’이라고 답하는 등 부정적 의견이 90.7%나 됐다.
정부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불신’(68.6%), ‘대선 등 정치적 고려’(23.3%) 등을 꼽았고, 정부가 주장하는 ‘개방형 브리핑제의 완성 등 언론개혁 의지’라고 답한 응답자는 6.6%에 그쳤다.
현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03년 6월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하면서 기존 기자실을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로 바꾸고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제한한 이후 ‘정보 공급을 늘리고 행정을 더욱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리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공언(空言)이 됐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 각 정부 기관은 ‘맹탕 브리핑’을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승용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자유로운 대면 접촉만 불편해질 뿐 혁신이고 진취적인 취재 방안”이라며 “공무원들이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도록 총리 훈령을 자세히 규범화하면 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4개 조항의 공동 발표문 4조는 ‘정부는 대면 및 온라인 취재 요청에 대한 성실하고 적극적인 응대를 가이드라인으로 규정해 이를 총리 훈령으로 제정한다’고 돼 있다는 것.
그러나 유재천 한림대 특임교수는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 기자들과 공무원의 만남은 차단돼야 한다는 것인데, 총리 훈령을 만든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취재에 응하겠느냐”며 “정부의 방침은 모든 언론을 정부 홍보기관으로 만들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자협회를 제외한 다른 단체와는 대화가 잘 진행됐다”고 했지만 한국방송프로듀서(PD)연합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은 일선 취재현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반 기자들은 매일 출입처 중심으로 현장 취재를 하지만 PD와 인터넷매체 기자들의 취재 방식은 다르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가 이들 단체와의 논의를 바탕으로 공동 발표문 초안을 만들고 ‘합의 정신’을 강조하며 수용하라고 압박하는 게 타당한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기협 왜 합의 불응하나
정부의 거듭된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자협회(회장 정일용)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공동발표문에 서명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일선 취재기자들의 반발과 저항 때문이다.
당초 기자협회는 정 회장이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대표와 함께 국정홍보처와 접촉해 14개항에 이르는 공동발표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동발표문에 대한 기자협회 내부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일선 기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협회 지회장들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방송과 통신, 중앙 일간지 등 대부분의 지회가 “기자실 폐쇄와 관련해 기자협회가 합의를 해 줘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게다가 기자협회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 3개 단체는 기자실 폐쇄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5일 열린 기자협회 내 취재환경개선투쟁 특위(위원장 박상범 KBS지회장)에서는 정 회장 등 언론 4단체장이 청와대 측과 합의한 공동발표문의 백지화를 결의했다. 특위는 백지화 결정에 대해 “기사송고실 폐지와 연관된 어떤 형태의 공동발표문도 한국기자협회 이름으로 발표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며 “그러나 청와대 측과 협의의 채널을 닫지는 않겠으며 진정한 취재 환경 개선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특위는 정부-언론단체 공동발표문이 아닌 별도의 안을 준비 중이다. 특위 안은 △정보공개청구제 대폭 개선 △과장급 이상 관리직 공무원의 취재 응대를 명시하는 대면접촉권 확대 등의 요구가 포함돼 있다. 특위는 이 안을 10일 전체회의서 토의한 뒤 12일 협회 운영위에 정식으로 회부할 예정이다.
기자협회 내에서 공동발표문 서명을 놓고 이처럼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데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협회 일부 대표와 일선 기자들 간의 견해차가 적지 않기 때문. 특히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지회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와의 협상에 응했다는 불만이 일선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편협한 언론 인식에서 출발한 현실 진단이 기자실 통폐합 조치로 이어졌다고 본다”며 “기자실 통폐합 강행은 한국의 언론 자유를 후퇴시킨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