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MD 역제안에 의표찔린 미국

  • 입력 2007년 6월 10일 2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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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표(意表)를 찔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습 제안이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 미사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MD)이 꼭 필요하다면 (러시아의 코앞인) 체코나 폴란드가 아닌 (이란과 가까운) 아제르바이잔에 공동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동유럽 MD 기지는 러시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고 강조해온 미국으로선 반대할 명분이 약한 카드를 던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8일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요격미사일을 터키나 이라크, 그리고 해상에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일단 "흥미로운 제안"이라고만 코멘트했던 부시 대통령은 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알현때 교황이 이 문제를 묻자 기자들을 흘끗 쳐다보면서 "좀 있다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든 존드로이 대변인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며 "러시아 측과 다양한 측면에 대해 논의해보겠다"고만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8일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미사일 기지의 위치는 그냥 갑작스레 정하는게 아니다"며 MD계획을 당초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 채 제의를 거부하면 미국은 명분대결에서 밀리게 된다. "서유럽을 겨냥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며 '핵전쟁'을 운운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러시아에서도 비판 여론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미 행정부는 다음달 미국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 때까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태도만 취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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