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판사 실명공개 강행…'마녀사냥식' 여론재판 우려

  • 입력 2007년 1월 30일 18시 16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실명 공개를 강행하기로 하자 법조계에서는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대법원은 물론 재야법조계에서는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다 해도 이런 식으로 하면 또다시 반성해야 할 과거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집단적 마녀사냥"=법조계에서는 판결문을 열람하면 일반인도 볼 수 있는 법관 이름을 별도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해 공개하겠다고 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게다가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고려나 판결문 원문도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언론을 통해 현직 법관들의 실명부터 공개된 과정을 의심하는 표정이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사 정리가 '법관의 이름'이 본질이 아니지 않느냐"며 "법관 개인이 살아온 삶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거나 판결을 분석도 하지 않은 채 매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잘못된 판결을 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녀사냥을 한다면 무슨 진실이 규명되고 화해가 이뤄질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현직에 남아 있는 몇몇 법관에게 불행했던 과거의 모든 책임을 지우려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았다.

한 부장판사는 "불행한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음은 대다수 판사도 수긍한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실정법 하에서 이뤄진 판결에 대한 옥석 구분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판사로 임용된지 몇 년 되지 않은 배석 판사로서 판결을 책임질 위치에 있지도 않았던 12명의 현직 법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합당한가"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했던 검사들이 모두 현직을 떠났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덜했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독재에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고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을 포상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망신을 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독재시기에 판사를 한 것이 죄가 된다면 다른 공직자들도 모두 그 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한 중견 검사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판사가 책임을 갖고 판결한 것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다"면서 "당시 시국사건을 수사한 검사 명단을 공개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한변협 신현호 공보이사는 "여론몰이식으로 명단을 발표해 판사들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지게 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해냐, 분열이냐=당초 과거사위는 '진실규명과 화해'를 내세워 과거사 정리 작업에 나섰지만 이번 일은 오히려 국론 분열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논평을 통해 "과거 유신체제하에서 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했던 불행한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유신헌법에 의한 재판까지도 비난대상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국론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변협은 이어 "과거의 진상규명은 필요하지만 역사를 단절시키거나 국론을 분열시켜 미래를 향한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과거사 처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자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초 대법원은 일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에 관여했던 점을 검토했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많은 고민 끝에 이런 식으로 인적 청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제청한 것 아니겠나"라고 전했다.

이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인적 청산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그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고 사법부 구성원이 광범위하게 동의할 수 있도록 법원 역사를 재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적 청산 같은 방식 대신 대법원 판례 변경 등을 통해 과거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의 오류를 바로잡겠다는 것. 이후 대법원은 1972년~1987년 사이 긴급조치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의 판결문 6000여 건을 분석해 재심 대상을 분류하고 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장택동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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