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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23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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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림수=한나라당은 ‘제2의 탄핵 유도 발언’으로 규정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도의 계산이 깔린 발언이다. 노 대통령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지지세력 결집과 반대세력의 격랑을 부르기 위한 ‘제2의 탄핵 유도’ 발언을 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임기 1년여를 남겨 두고 여론조사 지지율이 10% 전후를 나타내는 등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노 대통령이 적군과 아군의 편 가르기를 통해 정국을 돌파하고, 내년 대선에 대비하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군 원로와 미국 등에 격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특유의 ‘이분법 구도’와 ‘고립화 전략’으로 흩어진 지지세력을 다시 묶어 2004년 탄핵 당시의 정치 상황을 재연하려는 의도라는 게 한나라당의 분석이다.
또 민주당 등과의 통합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실명을 거명한 것은 ‘통합신당 김 빼기’ 작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나아가 ‘영남신당’ 만들기 혹은 ‘영남후보’ 띄우기라는 관측도 있다. 호남을 주축으로 한 통합신당 세력과는 결별이 불가피한 만큼 이들에 대해 타격을 주고 영남권의 친노(親盧·친노무현 대통령) 세력을 주축으로 한 결사를 공고히 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계산이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대통령정무수석비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노 대통령은 영남지역 개혁의 싹을 잘 지키자는 생각이지 새롭게 뭘 꾀하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소수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중도 하야’를 위한 수순 밟기로 보는 이도 있다. 어차피 남은 임기 중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시달리고 경제 사정이 좋아질 리가 없는 만큼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중도 사퇴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비난으로 오히려 현 정부의 초대 총리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친노 세력을 제외한 다수 세력을 우군(友軍)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흥미로운 게임이 시작됐다”며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공세에 수세적으로 반발하는 정도에 그치면 밀리겠지만, 이를 잘 활용해 노 대통령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면 국민의 관심을 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 추동 움직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하다. 열린우리당 김 의장은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다음 주 열리는 의원 워크숍에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결론이 내려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우리 사이에 같은 점이 많은데 이를 확인하고 다르다면 왜 다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함께할지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통합신당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셈이다.
하지만 통합신당파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극단으로 치닫곤 하는 노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에 비춰 이번 발언이 한바탕 혈전(血戰)을 예고한 것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이런 복잡한 상황은 ‘공교롭게도’ 이날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의원직 상실형 확정 판결과 맞물려 정치적 불가측성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한 대표의 퇴장으로 당의 구심점이 사라진 민주당은 결속력이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내에는 ‘친고건’ 세력이 적지 않아 이들을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통합신당의 출현 등 정계개편의 핵심 열쇠는 거대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쥐고 있지만 민주당과 고 전 총리 주변부의 기류 변화도 열린우리당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범여권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한층 고조시켰다는 얘기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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