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中 야심, 日 우경화가 동북아 ‘3대 불씨’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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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공동주최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주제별 논문을 발표한 뒤 토론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공동주최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주제별 논문을 발표한 뒤 토론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전쟁사를 통해 미래의 발전적 전망을 모색하는 국제학술회의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김홍우 서울대 교수)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공동주최로 열렸다. ‘한국사의 전쟁과 평화, 그 정치사상사적 조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는 주미대사를 지낸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와 이택휘 한양대 석좌교수,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동아일보가 후원하고 한국해양전략연구소가 협찬한 이날 회의에는 본보 김학준 사장이 참석해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으며 랴오밍춘(廖名春) 중국 칭화(淸華)대 교수를 비롯한 외국 학자 3명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 등 한국학자 15명이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학술회의는 △제1회의: ‘동서양의 전쟁과 평화사상’ △제2회의: ‘한국의 전쟁과 평화사상’ △제3회의: ‘전쟁과 문화’ 순으로 진행됐으며 제1, 제2회의의 발표와 토론을 주제별로 요약 정리했다.

정리=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서는 동북아 안보 불안정의 원인으로 북한의 핵실험과 중국의 팽창주의, 일본의 우경화를 꼽았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민족 공조’의 강조를 한국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한반도의 존망을 위협한 사건들의 원인으로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을 꼽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학준 사장은 강연에서 “북한 핵을 무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일각의 주장에 반대한다”며 “한반도에서 어떠한 명분 아래서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장은 “북한 핵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도 핵무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일본의 핵무장론에도 반대한다”며 “유엔을 통한 국제 공조 속에서 외교적으로 북한 핵을 완전히 해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남성 국방대 교수는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한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돼 민족 공조라는 허상에 매달렸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부남철 영산대 학부대학 교수는 “임진왜란 시기 일본 사절단을 통해 파악된 일본의 조선 침공 가능성을 무시하고 명의 몰락을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는 등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이 그 같은 화를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다.

부 교수는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의 이유로 유교를 통한 왕권의 확립이라는 국내 정치 논리를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시켰다는 점을 꼽았다.

왕권에 대한 도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동일시하고 이 같은 원리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변화시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조선시대의 통치 원리를 국제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

그는 “국제 정치를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은 강대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당시 집권층의 이 같은 현실 인식이 근대 개화기까지 계속돼 큰 비극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실패 역시 국제 정세에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는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0년대 말 미일전쟁설의 확산, 러일전쟁 발발의 기대감으로 독립전쟁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내부 노선과 재정 준비에 대한 갈등으로 표류하다 간도 사태로 시기를 늦추면서 임시정부 자체가 위축되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신복룡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당시 국제 정세를 볼 때 독립운동 세력은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통한 독립전쟁에 나섰어야 했지만 내부 갈등으로 시기를 놓친 측면이 컸다”고 지적했다.

■동북아 위기 잠재울 대안은…

빅토르 웨 주한 벨기에대사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동북아 안보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식 통합을 제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던 근대 유럽의 충돌과 갈등이 유럽연합(EU)으로 대표되는 유럽 공동체가 등장함에 따라 해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 웨 대사의 주장이다.

그는 “기독교 문화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수세기 동안 격전의 장이었으며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갈등이 심화돼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맞았다”며 “현재 동북아시아는 EU 결성 이전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웨 대사는 “세계대전 이후에도 평화 실현의 방법을 찾지 못하던 유럽이 EU를 통해 안정된 것처럼 동북아도 공동체 방식을 통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공동체 형성 과정에 필요한 보편적인 법 제정과 다자체제의 구축을 통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각국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접근해 나가는 것이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구나 국력의 차이가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독일은 룩셈부르크에 비해 인구가 160배나 많았던 것과 비교해 중국의 인구는 한국의 26배 수준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럽식 공동체 방안을 동북아 지역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유럽은 각국이 영토를 비교적 균등하게 나눠 갖고 있는 반면 동북아는 중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유럽과 달리 동북아에는 독도 문제와 난사(南沙)군도 등 여전히 민감한 영토 분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합 이전의 유럽은 국적에 따른 민족주의로 갈등을 빚은 데 반해 한중일 등 동북아는 혈통에서 비롯된 민족주의가 강하다는 것도 차이점. 특히 이 같은 혈통에 따른 민족주의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중국의 팽창주의와 일본의 우경화로 이어져 양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비화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또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를 표방했던 일본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 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것도 유럽 통합과 달리 동북아 통합이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허남성 교수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보상에 적극적이었던 독일과 달리 전쟁범죄를 축소 부인하고 있는 일본의 자세가 해결되지 않으면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의 팽창주의도 통합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中-日, 영토야심-역사왜곡 왜?

랴오밍춘 교수는 “중국의 전쟁과 평화사상은 공자의 ‘힘의 논리에 의한 정치를 배척하고 인(仁)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인학(仁學)평화사상과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의 전쟁론이 대표적”이라며 “현대 중국에서도 이 같은 전통적 전쟁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등장 이후 계급투쟁적 의미에서의 전쟁관이 추가됐지만 서방과의 대결과 함께 협력을 강조하는 ‘평화와 발전’ 노선을 펴고 있는 것이 전통적 전쟁관을 유지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히라이시 나오아키(平石直昭) 도쿄(東京)대 교수도 “일본의 전쟁관인 무사도는 무인 계급의 의무로 불교와 양명학 등을 반영한 도덕적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중-일의 전통적 전쟁관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민족주의와 혼합되면서 팽창주의 및 우경화로 이어져 동북아의 불안을 높인다는 지적도 많았다.

히라이시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무사도는 근대에 들어와 전쟁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근거가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허남성 교수는 “중국의 경우 중화사상에 기반을 둔 팽창주의가 공산정권 수립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티베트 강점과 동북공정 등 영토 야심과 역사 왜곡이 그 단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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