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작전권 이양은 美에 이익” 확신 선 듯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전시작전통제권 이양(한국 단독 행사) 문제에 관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생각은 지난 1, 2개월 사이에 빠르게 변화했다. 그가 14일(현지 시간)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의견 일치를 봤다. 이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은 한국에서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초기엔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이 주도=부시 대통령은 올 8월 초까지도 전시작전권 문제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최근 기자에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7월에) 들어서야 이 사안을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전시작전권 협상이 양국 국방부 주도 아래 진행된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이 된 것은 불과 수개월 전부터다. 미 국방부는 올 6월 “한국이 요구한다면 넘겨주겠다. 그 시점은 2009년이 좋다”는 방침을 통보하기 전까지는 “과연 전시작전권을 넘기면 한국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그동안 차분히 전시작전권 이양의 손익을 계산했고, 해볼 만하다는 결정을 내린 뒤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의 결정 뒤에는 럼즈펠드 장관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 내 지상군을 뽑아내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이라크에 배치하려고 했다. 또 한국에 대한 애정이 식어 가면서 ‘동맹의 의무감’에서도 벗어났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동의=부시 대통령의 정식 재가가 난 것은 8월 15일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야전지휘관 회의(Tank Conference)’에서였다. 미 국방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에게 “반미감정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는 질문을 모두 세 차례나 반복했다. 그때마다 럼즈펠드 장관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시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그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겠지?”라고 물었고, 럼즈펠드 장관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좋다. 그럼 해 보라”는 부시 대통령의 지시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논란 잠재우기=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정치적 이슈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은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 때문에 전시작전권을 넘긴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뜻도 들어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가 전시작전권 이양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이 남긴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전시작전권 문제를 자주권이란 어젠다로 제기하고 있는데 여기에 미적거리는 태도를 취할 경우 새로운 반미 논쟁의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 한 소식통도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북한을 염두에 둔) 대테러 정책에서 협력관계가 꼭 필요한 핵심 국가’라는 관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한미연합사령부 시스템의 효율성을 손해 본다 해도 반미감정의 큰 불씨를 남겨둬 대테러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해체로 전력의 손실이 생긴다 해도 강화된 미일 안보 관계로 메울 수 있다는 점,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 등 실질적으로도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도 백악관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1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이나 한미 간 조율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런 정도의 발언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부시 정상회담 진행 주도

14일 낮(한국 시간 15일 오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먼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꺼내며 회담을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전시작전권 문제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이 문제는 정치적 논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을 발전, 격상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는 정치와 무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더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양 정상은 “환수 시기를 놓고 이견은 있지만 이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실무적 문제로서 향후 합리적 조율을 통해 합의해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한국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 문제를 순차적으로 거론했다.

북한 핵문제는 45분간 진행된 회담의 끝 무렵에 논의됐다. 부시 대통령이 “시간이 없으니 북핵 문제도 얘기하자”고 말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이러면 북핵 문제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참석자가 전했다.

회담이 이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된 것은 양국 정상이 사전 조율된 의제를 충분히 숙지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회담 전날인 13일 우리 측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미국 측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2’ 회동을 통해 의제를 사전 조율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상회담 전 이 같은 ‘2+2 회동’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이 채널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이은 언론회동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김정일’로 지칭했다.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 때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했던 것에 비해 격이 떨어진 지칭으로, 여기에는 북한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부시 대통령은 실제로 “한반도의 안전은 북한 주민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식탁에 음식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안전이 중요하다”며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등 김 위원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는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는 호칭을 썼다. 이전 정상회담 때는 노 대통령을 ‘대화하기 편한 상대’, ‘친한 친구’, ‘민주적인 지도자’ 등으로 표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시작된 오찬에서 반 장관이 14일 유엔 사무총장 선거 2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데 관심을 표명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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