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부터 8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우리당은 헌법을 비롯한 법 절차를 무시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한나라당은 하루에도 몇 번씩 태도를 바꾸며 혼선을 가중시켰다.
▽무리수 둔 청와대, 총대 멘 열린우리당=여야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이던 전 후보자를 헌재 소장으로 곧바로 지명했으면 소모적인 적법성 논란은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헌법 제111조 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헌재 재판관이던 전 후보자를 사퇴시킨 뒤 헌재 소장 후보로 지명했다. 전 후보자가 헌재 소장의 6년 임기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청와대가 나서서 헌재 재판관을 사퇴시킴으로써 민간인 신분으로 만든 것이 위법 논란의 발단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이 ‘코드’에 맞는 전 후보자에게 6년의 임기를 채워주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법망에 걸린 셈이다. 게다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전화 한 통에 헌재 재판관을 사퇴했다는 전 후보자의 ‘고백’은 헌법수호기관 수장으로서의 자질과 정치적 독립성에 의심이 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헌법에 정통한 헌재 재판관이 사표를 낸 뒤 헌재 소장으로 지명되는 과정의 법적인 허점을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해 전 후보자의 전문성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열린우리당 또한 전 후보자 지명 절차에 위법성이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법에 따른 해법보다는 정치적인 타협을 모색했다.
8일 본회의에서 선병렬 의원은 5분 발언을 통해 “여야 합의를 통해 다소간 절차상 문제를 보완하기로 해놓고 한나라당이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위법으로 전 후보자를 내정해 놓고 해외로 나가버렸는데, 엉뚱하게 총대는 여당이 메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대(大)가 소(小)를 포함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은 헌재 재판관 임명동의안의 의미를 포함한다. 똑같은 사람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두 번 하자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헌재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법사위 청문회를 먼저 열고, 이후 헌재 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를 열어야 한다”고 버텼다.
정부 여당은 위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7일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을 ‘헌재 재판관 및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으로 바꿔 국회에 제출했고, 이는 국회의장을 거쳐 인사청문특위로 넘겨졌다.
6일 한나라당 의원들은 조순형 의원의 전 후보자 지명 절차 위법성 지적을 빌미 삼아 부랴부랴 ‘불법 청문회’를 외치며 청문회를 보이콧했다. 이날 저녁 김형오 원내대표는 정부가 ‘헌재 재판관 및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으로 고쳐오는 조건으로 열린우리당과 청문회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자 7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전여옥 최고위원 등이 “불법 청문회에 왜 참석하느냐”며 제동을 걸었다.
이날 오후 청문회가 재개됐으나 이번에는 한나라당 특위 위원들이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를 먼저 거쳐야 한다며 인사청문특위를 파행시켰다.
8일 오후에는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임명동의안 표결에서의 당론 반대투표’를 결정했다. 불과 2시간 후 의원총회는 ‘전 후보자와 관련된 모든 국회 일정 보이콧’을 당론으로 채택해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향후 처리 어떻게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8일 무산됨에 따라 향후 처리 과정이 주목된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청문회 경과보고서가 3일 이내에 채택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경과보고서 채택을 끝까지 반대하더라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임명동의안을 회부하면 본회의 표결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칠 경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은 전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생긴 위법성 논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절차의 위법성을 이유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청구를 할 경우 헌재 소장을 상대로 한 헌재의 심리라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헌재 소장이 되려면 먼저 헌재 재판관이 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재판관이 되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헌재 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의 청문회를 또다시 거쳐야 하는 것.
열린우리당은 14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남은 기간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절차적 흠결을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법사위 청문회에서 위법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은 헌재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백 없이 연이어 해야 한다는 뜻으로 임기 도중에 사퇴한 전 후보자는 이 규정에 걸린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버티다 결국 새로운 헌재 소장을 물색할 가능성도 있다. 여권이 전 후보자의 헌재 소장 지명 과정 자체가 헌법 등에 저촉된다고 판단할 경우 새 헌재 소장 후보자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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