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北’용서 발언 논란]평소 ‘과거 청산 원칙’은 어디로

  • 입력 2006년 8월 17일 03시 00분


北으로 가는 구호품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회원들이 16일 인천항에서 북한 수해지역에 보낼 밀가루 40t과 의류 등 3억2000만 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실은 화물선 앞에서 선적식을 하고 있다. 이 배는 이날 북한 평남 남포항으로 출발했다. 인천=연합뉴스
北으로 가는 구호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회원들이 16일 인천항에서 북한 수해지역에 보낼 밀가루 40t과 의류 등 3억2000만 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실은 화물선 앞에서 선적식을 하고 있다. 이 배는 이날 북한 평남 남포항으로 출발했다. 인천=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며 “(북한이 저지른 전쟁과 납치 등) 지난날을 용서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북한의 과거를 용서하자고 하면서도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할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무조건적 용서’를 말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인류 보편적 가치’ 적용의 제외?=노 대통령은 2005년 8·15 경축사에서는 국내 친일반민족 행위의 과거 청산에 적용해야 할 원칙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피해당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여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자면 먼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사과, 배상 또는 보상, 그리고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며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올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이 저지른 전쟁과 납치 등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관용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넓은 마음’과 ‘긴 시야’로 용서하자고 주장했다.

▽조건 없는 관용의 덫=노 대통령은 2004년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설명이 어렵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다”며 “그럼에도 결국 한민족으로서 보듬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상임위 합동회의 연설에서도 노 대통령은 “북한과의 과거를 기억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도 많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우리의 감정적인 기분을 맞출 일도 아니고 자존심을 세울 일도 아니다”며 관용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서만 ‘인류 보편의 방식’을 회피하는 것은 ‘한국적 예외주의’를 강조하게 돼 결과적으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국론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에 대해 현 정부가 보이고 있는 태도가 대표적인 예라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어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어떤 가치라도 포기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것”이라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한 선택이 국익에 미칠 악영향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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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北수해 지원 대체 얼마나…▼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2차 대북 수해 지원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11일 비교적 신속하게 민간 대북지원단체가 모금한 100억 원에 상응하는 액수를 보태 2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부를 가장 고심케 하는 대목은 적정한 쌀 지원량. 북한이 이번 수해로 입은 식량 피해에 준해 지원량을 결정하면 될 것 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사망자 549명, 행방불명자 295명, 부상자 3043명이라고 수해 규모를 밝혔다. 그러나 대북 민간단체들은 행방불명자가 1만여 명에 이재민이 130만∼150만 명으로 발표할 정도로 피해 산정 편차가 크다.

대북 쌀 지원의 창구 역할을 할 대한적십자사 한완상 총재는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10만 t의 쌀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정부가 결정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쌀 카드’가 북한에 대한 긴급구호의 성격을 띠면서도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해빙 기능도 해 줘야 한다는 이중의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명색이 ‘긴급구호’인데 수십만 t을 보낸다면 ‘대북 퍼주기’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10만 t 이하를 보내면 북한의 기대 수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남북관계 복원의 유인책으로 기능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대북 식량지원용 쌀의 가격은 t당 40만 원 정도로 10만 t을 지원할 경우 400억 원 정도가 든다. 통일부는 18일 국회에서 열리는 남북평화통일 특별위원회에서 대북 수해 지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 주 중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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