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미-일엔 ‘조목조목’… 북한엔 ‘조용조용’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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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방송 발언을 두둔하자 이 장관이 묵묵히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방송 발언을 두둔하자 이 장관이 묵묵히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북한 미사일 문제에 있어 미국이 가장 실패한 나라’라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두둔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對北) 제재 움직임에 대한 불만표시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말하고, 북한에 대해선 유화적인 듯한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방지를 위한 계산된 국내용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에 할말은 해야 한다”=노 대통령은 언론에 공개되는 국무회의 모두발언 시간을 이용해 이런 메시지를 쏟아냈다. 작심했다는 뜻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대북 압박에 대해 직접화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목조르기’ 등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이 24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할말은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노 대통령의 의중을 고스란히 반영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이 상황 관리를 위한 노력을 다하지도 않고 대북 제재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북한에 대한 대응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1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통해 북한 제재를 가시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한 우회적 불만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의 ‘소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한 TV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갔다 와야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일 강경 발언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레임덕 방지용 포석=노 대통령이 이날 영국 의회의 사례를 들면서 “장관이 소신에 찬 모습으로 답변하는 모습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임기 말 관리를 염두에 둔 독전으로 보인다. 대통령 임기 후반을 맞아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며 느슨해지기 쉬운 내각을 다잡기 위한 ‘정치적 선제구’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장관들이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노 대통령은 몇 달 전 장차관들이 참석한 비공개 모임에서 “현 정부에서 장차관까지 올라간 당신들은 어차피 ‘노무현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다음 정권에서는 출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나를 끝까지 도와 달라”는 취지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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