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한국, 언제까지 끌려다닐 텐가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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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1일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 경수로 사업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은 종료됐다.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태천과 영변의 중수로 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0여 년의 기간에 북한 인구의 10% 내외가 굶어죽기도 했다. 하지만 제네바 합의는 사문화되고 경수로 사업도 중도에 종료되고 말았다.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다시 탈퇴하고, 2005년 2월 ‘핵 보유 선언’을 함으로써 경수로 대신 핵무기를 선택했다.

제네바 합의가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 북한의 과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은 핵 개발 동결 카드로 재미를 보자 미사일 카드를 내밀고,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을 추진하는 등 과욕을 부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마치 욕심 많은 개가 고기를 물고 있는 자기 모습이 냇물에 비친 것을 보고 이를 탐내 짖다가 물고 있던 고기마저 놓친 격이다. 경수로 2기에서 생산할 200만 kW 전력이면 북한이 지금 생산하고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 양이다. 합의 이행이 잘됐더라면 ‘동토의 왕국’이 불야성을 이루고 경제 재건을 위한 에너지 공급이 본격화됐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대북정책의 변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조기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에는 미국의 개입 및 확대 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 사이에 이익의 조화점이 있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세계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이 충돌해 양국 사이에 이익의 조화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불량국가론’과 ‘악의 축’의 논리에 따른 대북 압박정책은 북한의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공존에 기초한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을 조성했다.

우리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질 때 우리 정부는 완전히 소외됐다. 하지만 경수로 공사비용의 70%를 우리가 부담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부담하는 비용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오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반도 비핵화와 경수로 제공 중단을 전제로 한 200만 kW 직접 송전이란 ‘중대 제안’도 에너지 종속에 대한 북한의 우려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수로 사업 종료가 갖는 가장 아쉬운 점은 대북 지원을 위한 KEDO라는 국제협력기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참여한 KEDO는 북한에 대한 에너지 제공과 경제 재건을 지원하는 국제협력기구로, 북한에 경수로가 제공될 때쯤이면 북한도 세계경제의 일부로 편입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KEDO가 성공했다면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으로 이를 확대하여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국제협력기구로 확대 개편할 수 있는 기본 틀이 됐을 것이다.

이제 제네바 합의와 KEDO의 역할은 종료됐다. 하지만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이 작년 9월 북한의 모든 핵 포기와 그에 따른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한반도의 비핵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발표한 9·19 공동성명 및 6자회담이 이를 계승하게 됐다. 신포 경수로 사업은 종료됐지만 경수로 제공 문제는 6자회담의 의제로 남아 있다.

제네바 합의의 ‘양자 틀’은 6자회담의 ‘다자 틀’로 확대됐다. 6자회담의 성패는 회담 당사자들이 KEDO 실패의 원인을 올바로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행위자의 수가 많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시 남북한과 미국이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현실적으로 중요 쟁점 사항에 대한 북-미 간 고위급 정치회담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핵 해결의 진전은 어렵다. 6개월이 넘도록 교착 국면에 빠진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북한 외무성이 초청한 6자회담 미국 측 단장의 평양 방문이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이 또다시 소외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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