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김덕룡-박성범의원 수사 의뢰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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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허태열 사무총장(오른쪽)이 12일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김덕룡 박성범 의원이 서울 서초구청장과 중구청장 공천과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한나라당 허태열 사무총장(오른쪽)이 12일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김덕룡 박성범 의원이 서울 서초구청장과 중구청장 공천과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金 부인이 2월부터 여러 차례 돈다발 받아
朴 케이크상자에 달러뭉치-현금 1000만원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박성범(朴成範) 의원의 공천 관련 금품 수수는 모두 부인을 통해 이뤄졌고, 현금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공천 헌금 비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그 실상이 일부 드러난 셈이다.

▽금품 수수 경위=한나라당 클린공천 감찰단(단장 김재원·金在原)에 따르면 김 의원의 부인 김모 씨는 서울 서초구청장 출마 희망자인 서울시의원 한모(67) 씨의 부인 전모 씨에게서 2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모두 4억4000만 원을 받았다. 전 씨는 당시 현금 뭉치를 포장해 의사인 김 씨가 근무하는 병원 사무실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감찰단에 “3월 27일 발표된 공천에서 탈락한 한 씨가 5일 찾아와 ‘돈을 줬는데 왜 공천을 안 주느냐’고 항의해 돈이 건네진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아내에게 돌려주라고 했는데 아내가 ‘연락이 안 돼 못 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1월경 부부 동반으로 성낙합(成樂合) 전 서울 중구청장의 부인 박모 씨의 인척인 장모(여) 씨와 함께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헤어지면서 차를 타는 순간 장 씨가 뒷좌석에 “집에 가 드시라”며 케이크 상자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사람들도 보고 있어 안 받는다고 옥신각신하기 뭣해서 그냥 집에 와 보니 상자 안에 달러 뭉치와 비닐에 싸인 1000만 원쯤 돼 보이는 현금이 들어 있어 바로 다음 날 돌려줬다”고 말했다.

장 씨는 서울 중구 당원협의회에서 일을 했으며 남대문시장에서 환전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당초 성 전 구청장의 재공천을 부탁했으나 3월 그가 작고하자 대신 성 전 구청장의 부인 박모 씨를 공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김 단장은 밝혔다.

박 의원은 또 1월 초에는 장 씨에게서 1병에 시가 200만 원을 호가한다는 최고급 양주 루이13세와 모피 코트, 최고급 핸드백 등 1500만∼2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받았다.

▽제보 및 조사=김 의원 측의 금품 수수 사실이 한나라당에 제보된 것은 4월 6일경이다. 3월 27일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탈락이 결정된 한 씨 측이 4월 5일 김 의원을 찾아가 항의하며 공천자를 자신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당 감찰단에 금품수수 사실을 제보해 왔다는 것. 한 씨는 금품 수수 사실 등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김 의원과의 통화녹취록도 당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 측의 금품 수수 의혹도 비슷한 무렵 돈을 준 측이 공천 탈락에 항의하며 당 감찰단에 이를 알려옴으로써 인지하게 됐다.

당 감찰단은 해당 의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일단 금품이 건네진 상황을 확인한 뒤 당 지도부에 비밀리에 결과를 보고했고 당 지도부는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검찰 수사 의뢰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金 “수사 응할것”… 朴 “黨이 이럴수 있나”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12일 당의 검찰 수사의뢰 방침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당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언제든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인들 간에 금전이 오고간 사실을 공천심사과정에서는 물론 공천발표(3월 27일) 때까지도 전혀 몰랐으며 4월 5일 뒤늦게 알게 됐다. 그 즉시 바로 가져갈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며 “모든 책임은 내게 있고 아내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돈이 오가기는 했지만) 공천과정에서는 금전문제가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의원과 함께 수사 의뢰된 박성범 의원은 “장모 씨와 저녁식사 후 헤어지던 길에 케이크 상자를 받아 집에 와서 보니 돈이 있어 다음날 아침 아내가 ‘안 가져가면 선관위원회나 중구청으로 가져가겠다’고 장 씨에게 전화했고, 장 씨가 되찾아간 것이 전부”라며 반발했다.

그는 “장 씨가 (억울하면) 나를 고소하면 될 것 아니냐. 그러면 나는 무고로 맞고소해 법정에서 사실을 가리면 된다. 당 클린공천 감찰단에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당이 소속 의원의 얘기를 믿지 않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렇게 일처리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 씨에게서 고급 양주와 값비싼 의류 등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것마저 거부하면 공천에서 완전히 배제됐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까봐 나중에 적당할 때 돌려주려고 했는데 받지 않아 당 클린공천 감찰단에 넘겼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서울 서초을에서 1988년부터 현재까지 5선 의원을 역임하고 있다.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이 유력한 상태였다. 호남 출신으로, 당 내 다수파는 아니지만 박 대표 측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기사람을 집요하게 챙기는 스타일로 정평이 있다. 그의 부인은 의사다.

박 의원은 재선으로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부인은 인기 앵커우먼 출신의 신은경 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쉬쉬하다 일 더 키울라”유례없는 ‘제식구 치기’
黨 내부 “잇단 공천 잡음에 터질게 터졌다”

12일 저녁 국회 기자회견장.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 방침을 발표하는 허태열 사무총장은 비감한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감으로 거론되는 김 의원과 현직 서울시당위원장인 박 의원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키로 하자 당내에서는 물론 열린우리당에서조차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은밀한 거래’가 오가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던 차에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감싸다간 더 큰 치명상=한나라당이 수사 의뢰를 하기로 한 데 대해 허 총장은 “공천권을 시·도당에 이양하는 개혁공천 과정에서 당이 깨끗하고 투명한 공천의 중요성을 수도 없이 말해 왔다”며 원칙에 따른 대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올해 초부터 틈만 나면 공천 비리에 대한 일벌백계 방침을 강조해 왔다.

그렇더라도 당 중진 2명의 거액 수수는 자칫 지방선거 판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를 의뢰키로 한 데는 거액수수 혐의를 쉬쉬하고 있다가 자칫 은폐 또는 감싸기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더 큰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연희(崔鉛熙) 의원의 성추행 파문이 잠잠해질 무렵 또다시 터진 악재가 위기감을 더욱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박 대표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 의원을 읍참마속(泣斬馬謖)했다는 것이 당내의 분석이다.

이번 수사의뢰로 김 의원도 어떤 식으로든 내상을 입을 것이 분명해 지방선거 이후 ‘박대표=대권, 김 의원=당권’ 구도를 염두에 두었던 박 대표 측의 구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불가피해졌다.

▽공천비리의혹 제보 200여 건=한나라당의 중앙당 ‘클린공천 감찰단’에는 갖가지 공천비리 의혹 제보가 200여 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대구의 한 지역구 K 의원이 시의원 출마 희망자 S 씨에게서 거액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내용의 투서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게재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의원은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S 씨는 공천비리 폭로 무마용으로 K 의원의 전 비서관 L 씨에게 600만 원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달 중순에는 서울의 한 당원협의회장(구 지구당위원장)이 모 호텔 사우나에서 광역 및 기초의원 후보 공천 대가로 거액을 받기로 하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와 녹취록이 중앙당에 입수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당원협의회장은 “구청장 출마 희망자가 수천만 원을 들고 왔기에 호통을 쳐 돌려보냈더니 옆 지역구의 당원협의회장에게 달라붙어 공천 로비를 더 세게 하고 다니더라”고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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