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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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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모든 핵무기-핵프로그램 포기▼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의 포기 내용을 담은 것은 핵 비확산 협상의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부분은 미국의 주장을 북한이 수용한 것이다. 당초 북한은 ‘핵무기 및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만 포기하겠다고 맞섰다. 평화적 핵 이용을 위한 민수용 핵 시설 및 관련 프로그램은 남겨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핵 포기’는 1단계 회담 초반부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의견접근을 한 문제여서 북한으로서도 이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미국은 북한이 핵동결 약속을 위반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을 폐기 대상에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평화적 핵 이용 및 경수로 부분에서 북한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조속히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일찌감치 6개국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도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에 복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IAEA 측도 핵 사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의 협상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핵 폐기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 절차, NPT 복귀 시기, 보상과의 선후(先後) 문제 등을 놓고 작지 않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美의 對北안전보장-관계 정상화▼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주된 이유가 체제 및 정권을 포함한 생존권 차원의 불안이라고 보고 이에 관한 우려를 확실히 해소해 준 것이다.
공동성명은 미국의 불가침 약속 외에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별도 포럼과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 모색을 명시함으로써 북한의 생존위협을 이중 삼중으로 의식한 흔적이 역력했다. 북-미 양자 간 안전보장뿐만 아니라 일종의 다자간 안전보장도 함께 언급된 셈이다.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확인한 대목은 북한의 ‘남한 핵무기 존재 의혹’ 제기에 대한 문서상 답변인 셈이다. 이로써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강조한 북한의 주장도 우회적으로 반영한 셈이 됐다.
대북 안전보장의 구체적인 방식은 앞으로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요 문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미 관계정상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자간 對北경제협력 증진 약속▼
미국은 북한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국제적인 금융거래 제한, 미국 내 북한 관련 자산 동결, 여러 측면에서의 해상봉쇄 조치 등 경제 제재 조치를 대북 관계정상화 논의 과정에서 완화하거나 없애 나갈 것으로 보인다.
송민순 차관보가 “6자회담 틀이 아니더라도 양자 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조속히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한 것은 이를 의식한 측면이 짙다.
북한이 6자회담 참가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경제질서에 본격 편입된다면 단순히 경제 발전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국제적 신뢰를 쌓아 나가는 데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증진하는 데에는 한국과 일본이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의 2단계 회담과 동시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협 확대에 합의한 것은 이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한국은 이미 남북관계 차원에서 경협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일본과 북한과의 경제협력 관계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과 일본이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공동선언에 명시한 점이다.
북한이 1단계 회담에서는 일본과의 양자협의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인 2단계 회담에서는 북-일 양자협의를 수차례 가진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경제 지원 등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관측이 있다.
▼北의 평화적 核이용과 경수로 문제▼
이번 회담을 막판까지 진통으로 몰고 간 최대 쟁점이었다. 북한은 7월 말부터 13일간 열린 1단계 제4차 6자회담에서는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를 들고 나왔고, 이번 2단계 회담에선 경수로 제공 문제를 고집해 회담이 벽에 부닥치게 했다.
북한은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와 에너지 생존권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으나 미국은 경수로를 허용할 경우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북한이 회담 전부터 “경수로 문제는 회담 타결의 관건”이라고 압박하자 미국은 “경수로는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맞섰다.
북-미 간 타협에는 한국의 중재가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NPT 복귀와 IAEA 사찰을 전제로 평화적 핵 이용권 및 경수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절충안을 내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했다.
공동성명이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대해서는 ‘존중’을 표하고, 경수로 문제는 ‘적절한 시기에 논의한다’는 어정쩡한 형태로 봉합된 것은 첨예한 북-미 의견차를 절충한 결과다.
그러나 한국이 200만 kW의 전력을 북한에 제공한다는 중대 제안이 함경남도 신포의 경수로 건설 종료를 전제로 한 것인 데다 전력과 경수로 문제가 모두 공동성명에 담겨 있어 향후 협상과정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은 신포 경수로와 전력을 함께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는 “6자 합의에 따라 새로운 경수로가 어디에 지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해 신포 경수로 건설의 검토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했다.
북한은 핵 포기의 보상은 핵에너지 제공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차원의 신포 경수로 대신 6자회담 차원의 경수로 제공을 언급한 것은 이를 의식한 것이다.
북한이 ‘모든 핵 폐기’ 부분에서 양보한 이유는 경수로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후 협상에서 이 문제에 더욱 집착할 전망이다.
▼韓美日中러, 北에 에너지 제공▼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할 용의를 표명한 나라 중에 미국이 포함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그동안 핵문제를 일으킨 나라에 직접 경제적 보상을 해주면 다른 나라의 유사한 경우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에너지 지원 주체가 되길 꺼려 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6자회담 참가국과 함께 에너지 제공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북한은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됐음은 물론 ‘미국에서 핵 포기에 대한 직접 보상을 받는다’는 명분도 얻게 됐다.
당면한 에너지 지원은 중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은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라 매년 50만 t의 중유를 제공해 오다 2002년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지자 이를 중단했다. 이번 합의로 중유 제공이 재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또한 200만 kW의 전력 제공이 공동성명에 담겨 있고 이를 위한 준비 조치들이 진행된다고 할 경우, 전력이 실제 제공되기까지 2년 반∼3년 동안 중유를 제공하는 데에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 협상 시작▼
이는 어떻게 보면 북핵 문제를 넘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담보하는 핵심적인 문제다. 1953년 6·25전쟁이 휴전이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봉합된 이후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불안한 정전체제를 안정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이 주장 뒤에 숨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 때문에 이를 꺼려 온 게 사실이다. 이 문제는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하면 어떻게든 다뤄질 수밖에 없지만, 한국은 북한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낙관하고 있다.
평화체제 논의는 6자회담 차원이 아니라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논의하기로 한 만큼 누가 이 테이블에 끼느냐도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 북한은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 했으나, 앞으로 진행될 평화체제 논의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이 참여하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포럼은 북핵 폐기 과정과 북-미 간 관계정상화 대화, 남북관계 진전 상황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제반 현안과 속도를 맞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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