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 정체성’ 부정 폭력에 눈감은 정부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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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일부 단체의 시위가 폭력사태로 치닫고 있다. 전국민중연대 통일연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회원들이 그제 인천 자유공원에서 시위를 벌이다 동상을 지키려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하면서 수십 명이 다쳤다. 경찰이 동상 접근을 막자 쇠파이프와 대나무를 휘두르고 돌멩이를 던져 경찰도 10여 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은 ‘난생 처음 겪는 난리’라고 했다.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그가 김일성의 남침(南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했음은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전쟁 범죄자’라며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역사와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부정하는 행위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작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김일성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가. 그때 한반도가 적화(赤化)됐어야 옳았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시위 단체들의 사실관계와 논리 왜곡도 문제지만 이들의 이중적 행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집회신고를 하면서 평화적 시위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순식간에 폭력성을 드러내 수십 명의 부상자를 내고 인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처는 느슨하기만 하다. 신고 내용과는 달리 폭력시위로 번졌으나 아직 한 명도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한미동맹보다는 ‘민족끼리’라는 이름으로 남북관계를 풀어 보려는 노무현 정부의 기조(基調)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청와대는 어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정도로 입장을 정리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다”고 했다. 법질서를 무시하고 한미동맹을 흔드는 불법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 불법이 판쳐도 경찰은 어물쩍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부는 맥아더 동상 철거 요구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불법 시위도 더는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기강이 서고 대외관계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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