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통역 김동현씨가 말하는 비화

  • 입력 2005년 6월 21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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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한ㆍ미 정상회담때 참모가 써준 자료를 옆에 놓고 말하는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젊어서인지 유일하게 그 자료를 안보고 말한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잘하지만 자료를 참고하면서 했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한국 정부 입장을 자기 스타일대로 잘 소화해 제시했다"

"서울의 여야, 보수ㆍ진보 모두 지나치게 워싱턴이나 평양을 의식하는 것같다. 균형자론, 자주외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의 개념은 반미나 친미 논쟁과는 상관없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방법이 미숙한 데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80년대 이래 미국 국무부 통역관으로서 한ㆍ미간, 북ㆍ미간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통역으로 역할 했던 김동현(金東賢.69)씨의 말이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2000년 10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간 면담, 1994년 제네바 합의 협상, 그 이후 모든 북ㆍ미간 양자, 3자, 4자, 6자회담, 금창리ㆍ미사일ㆍ미군포로 유 해발굴 협상, 1999년 윌리엄 페리 특사 평양 방문, 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 평양 방문 등 김씨가 통역을 맡았던 회담이다. 그는 이달말 은퇴한다.

그는 '역사의 증인'으로 신분전환을 앞두고 20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한 한국식당에서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만나 통역 30년을 돌아보면서 한ㆍ미관계를 비롯해 북ㆍ미관계의 현주소와 미래에 관한 아쉬움과 희망을 말하고, 통역관으로 목격한 현장의 비화도 일부 소개했다.

한ㆍ미관계에 대해 그는 "지난 60년간 파란곡절과 기복의 역사에 비춰보면 양국관계의 현 주소가 더 나쁠 것도 더 좋을 것도 없다"며 "일부의 주장처럼 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오해가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므로 '어느 때보다 좋다'고 말할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한ㆍ미관계도 달라졌다"고 말하는 그는 미군정 혼란기, 휴전반대, 반공포로 석방, 5.16, 유신, 박동선 사건, 12.12, 5.18, 촛불시위 등 한ㆍ미동맹 역사에서 불거졌던 위기들을 가리키며 "설사 또 위기가 온다 해도 두 나라는 다시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 단계에서 '우리 민족끼리' 개념은 전쟁 억지력이 될 수 없으므로 동맹은 미국보다 한국의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한ㆍ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한ㆍ미 양국은 모두 대통령제이므로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것인 만큼 모든 것을 지금 당장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ㆍ미관계에 대해, 그는 "부시 행정부 임기 중 완전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감'을 전했다.

그는 그 이유로 "평양이나 워싱턴 모두 경직된 자신 중심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하고 "일방적인 가치관이나 도덕적 잣대의 고수, 체제 사수를 위해 죽어도 굽히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외고집" 대신 "실용적인 접근책이 필요하다"고 북ㆍ미 양측의 접근자세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중국의 대북 영향력 논란과 관련, 그는 북ㆍ미간 통역을 통해 체득한 듯 "평양은 중국이 자신들을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국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고 있다"며 "서울과 워싱턴 모두 중국의 의도나 대북 영향력 한계를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6자회담이 진전이 없어도 회담 자체가 정치적으로 의미 있었던 시기는 지나갔다"며 "미국의 네오콘들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고 6자회담 틀을 한반도 관리수단으로만 사용한다는 일부 진보파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 6자회담 이후를 우려하는 인상을 줬다.

그는 북한의 변화 전망에 대해 "북한은 대중관계에서 지정학적으로 여러차례 불행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전략적인 이해타산에서 중국보다는 미국 편에 서기를 내심 원하고 있다"고 체험담을 전하고 "북한은 영토야심이 없는 미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으므로, 미국도 거시적으로 새로운 전략적인 결단을 내린다면 동북아의 질서 재편과정에서 북한의 잠재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발상의 전환도 희망했다.

그는 또 "김정일 위원장은 태국과 같은 입헌 군주국가 체제에 관심을 보인 적도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대통령들이 미국측에서 이미 다 아는 것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다시 얘기하기보다는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으면 더 좋지 않나 생각 한다"며 노 대통령이 최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한ㆍ미동맹관계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것을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이 한ㆍ미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이후 노 대통령의 첫 방미 때가 양국간 조율과정에서 "진통이 가장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동영(鄭東泳) 통일장관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간 면담 내용에 대해 그는 "그전에도 김 위원장은 유사 발언들을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그동안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대표 등과 회담이나 면담 때도 깜짝쇼를 즐겨했다"며 "김일성(金日成) 주석 때 연극ㆍ연예 등 선전 업무에 치중한 때문인지 자신이 연출가로서 극적 효과를 통해 관중에게 서스펜스를 유지하려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영어를 잘하는 비법에 대해 "한국인이 영어를 통역할 만큼 잘 할 필요는 없다"며 "문법이 틀리더라도 명사와 동사만 큰 소리로 자신있게 말하는 듣는 쪽에서 이해하려 노력하므로 문제없다"고 자신감을 강조했다.

북ㆍ미간 회담에선 북한식 용어를 배워 통역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오는 8월 한국으로 가 1, 2년 머물며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할 예정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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