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객의 발길이 뜸해지면 그의 얼굴은 곧 굳어졌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됐다.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소환 통보가 임박한 상황에서 손가락 절단 문제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까지 휩싸인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듯했다.
▽단출한 식장=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최측근이지만 화환은 단 3개에 불과했다. 그중 2개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이 보낸 것이었다. 하객 중 정치인의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300∼400명의 하객 중 이 의원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지인들로 보였다.
이 의원은 결혼식 전 본보 기자를 만나 “오늘은 좋은 날인데 서로 예의를 지키자”며 단지(斷指) 논란 등에 대한 대화 자체를 거부했고, 식이 끝난 뒤에도 “이러지 말자”며 급히 식장을 떠났다.
이에 앞서 이 의원은 20일 오전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22일 결혼식이 끝난 뒤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솔직히 검찰에 자진출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검찰의 조사 일정에 맞춰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중되는 압박=이 의원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기류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분위기도 당과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22일 “이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한 채 검찰에 소환되면 당이 받을 타격은 엄청날 것”이라며 “이 문제는 이 의원 스스로 해결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이 이 의원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서게 된 배경엔 이 문제로 인해 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현상)’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친노(親盧) 직계의 핵심인 이 의원이 유전개발 의혹 같은 비리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단지 논란과 맞물린 병역 기피의혹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면 여권 핵심부 전체의 도덕성이 직격탄을 맞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여전히 상반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이 의원이 의원직을 걸 만큼 큰 잘못은 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애국적 단지를 기억한다. 안 의사는 조국이 위태로울 때 총을 쏠 수 있는 손가락은 남겨 두었다”며 “이 의원의 손가락에서 절절함이 묻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반문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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