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의 ‘거침없는 입’…기자들과 만찬서 ‘말말말’

  • 입력 2005년 5월 23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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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는 나보다 한참 하수(下手)다.”

“현재 시도지사 중에는 대통령감이 없다고 본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가진 출입기자 만찬 간담회에서 특유의 직설법으로 다음 대선과 현 정부의 국정 운영, 자신의 업무 수행 등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 총리는 이날 경기 성남시의 서울공항 이전 논란과 관련해 “서울공항은 신행정수도 건설 원안대로 청와대가 이전할 경우 그 필요성이 낮아져 이전을 검토해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보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총리는 “서울 수색동의 국방대와 금천구의 군부대를 비롯한 다른 군 시설을 이전하는 계획은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공직자윤리위원회와 부패방지위원회의 기능 조정 필요성과 관련해 “기능이 중복돼 부방위로 몰아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부방위로의 흡수 통합을 시사했다. 다음은 이 총리 발언 요지

▽차기 대선=대선 기획에선 내가 국내 최고 경험자다. 엉뚱한 사람보다는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현재 시도지사 중에는 대통령감이 없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나는 고수, 손학규 지사는 한참 아래다. 손 지사가 수도권발전대책협의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정치인으로서나 행정가로서나 도리가 아니었다.

▽국정 운영 평가=경기는 하반기부터 나아질 것 같다. 5∼5.3%로 내실 있게 성장하는 게 좋지만, 인위적으로 경기 부양을 해서 목표치를 달성할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반성 제대로 하라’며 큰소리 떵떵 치고 있는데 단군 이래 이런 때가 없었다. 4·30 재·보선 참패는 정부의 국정 운영 미숙보다는 투표율이 낮았던 게 주 원인이라고 본다.

▽업무수행 평가 등=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북한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을 때 남북 당국자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합의했다고는 발표 못 하고 그냥 논의했다고만 언론에 알렸다.

교육부 장관 때 가장 일을 잘 했던 것 같다. 수능시험 제도도 바꿨고, 교원정년제도 도입했으며, BK21 사업도 해서 황우석 교수 같은 이가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황 교수와는 대학 동기동창(서울대 72학번)으로 20년 지기다. 이번 연구 성과도 2월에 황 교수에게 직접 들었다. 성과를 알리고 싶은데 발표는 못 하니까 와서 자랑하더라. 황 교수가 ‘맛있는 쇠고기’ 연구도 했는데, 28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황 교수의 연구농장에 그 쇠고기를 먹으러 간다.

너무 바빠 러닝머신(트레드 밀) 위를 달리는 것 같다. 골프 칠 시간도 없어 골프 실력도 줄었다. 대통령과는 지난해 가을에 친 게 마지막이다.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의 골프 실력이 대한민국 공무원 중 최고일 것이다.

총리 그만둔 뒤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것은 정무부시장도 한 번 해봤고, 다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孫지사 “그 사람 입 거친것 세상이 다 아는 일”▼

22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이해찬 총리의 발언을 반박하는 손학규 경기지사. 김동주 기자

“그 사람 입이 거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니냐?”

손학규 경기지사는 “손 지사는 정치적으로 나보다 한참 하수”라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발언이 전해지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손 지사는 22일 기업투자유치 설명회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 사람이 정치는 잘할지 몰라도 행정이나 경제는 빵점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

손 지사는 이어 “(이 총리가 국무총리를 맡은 뒤) 우리나라 살림살이 모양을 돌아보라”며 “이런 식으로 가면 나라 경제가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손 지사는 20일 이 총리 주재로 열린 수도권발전대책협의회 4차 회의에서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 문제가 의제에 빠진 데 대해 “우리가 첨단기업 부분에 대해서만 신·증설 규제를 해제해 달라는 것이지 다 풀어 달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아무래도 일본에 다녀온 뒤 (이 총리와) 다시 한판 붙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22일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논평을 내고 “이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자리에 없는 상대(손 지사)를 비난한 것도 상식 이하지만 스스로를 ‘정치 고수’라고 자화자찬을 했다니, 겸손의 미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이런 점으로 볼 때 정치 고수가 아니라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 총리가 ‘일본에 이렇게 큰소리친 적은 단군 이래 없었다’고 말했는데, 이런 ‘막가파 외교’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이 원조”라며 “그런 대일 강경외교로 왜곡 교과서가 달라졌나, 독도에 대한 주장이 변했나, 신사 참배가 취소됐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성장률이 최악이고, 수출이 둔화되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실업자가 태반인데 이 총리는 ‘경기가 활성화되고 가을쯤 좋아진다’고 낙관론만 폈다”며 “경제 모르는 총리의 당연한 답”이라고 꼬집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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