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국회의원…이렇게 살아요

  • 입력 2005년 5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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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숙이 많이 먹어. 응∼.”

여기서 ‘봉숙이’는 민주당 비례대표 손봉숙(孫鳳淑·61) 의원이다. 손 의원의 남편인 서울대 정치학과 안청시(安淸市·61) 교수는 부인에게 이런 투로 말한다. 두 사람은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소문난 ‘닭살 부부’. 보좌진과 밥을 먹을 때 안 교수가 손수 부인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기도 한다.

안 교수는 자신이 회식으로 귀가가 늦어지면 손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봉숙이 저녁 좀 먹여서 들여보내줘. 잘 챙겨서 먹여”라고 신신당부한다. 몇 년 전 안 교수가 과로로 쓰러졌을 때는 병실의 비좁은 1인용 침대에서 두 사람이 ‘뒤엉켜’ 잠을 자기도 했다.

애처가인 그도 3년 후 부인의 지역구 출마 여부에 대해서만은 단호하다. “지역구? 60이 넘어 또 나간다고? 뜯어 말릴 거야….”

며칠 전 한나라당 이혜훈(李惠薰·41·서울 서초갑) 의원의 남편인 연세대 김영세(金泳世·43·경제학) 교수의 휴대전화가 강의 중에 울렸다. 중학교 2학년인 첫째아들이었다. 무시하고 수업을 끝낸 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선생님께서 학교에 좀 오시라는데요.” 김 교수는 이 의원을 찾았지만 ‘회의 중’이라는 수행비서의 답이 돌아왔다.

부인이 금배지를 단 뒤 자녀 학원 문제도 김 교수 몫이 됐다. 일반 주부들 사이에선 학원에 대한 ‘정보전’이 치열하지만, 김 교수에게는 ‘고급정보’가 올 리 없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김영주(金榮珠·50) 의원의 남편인 창원대 민긍기(閔肯基·52·국어국문학) 교수는 ‘의원님 남편’ 노릇이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김 의원은 최근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 출마를 위해 사무실을 냈다. 운동이라고는 ‘젬병’인 민 교수는 아파트 앞 조기축구회 현수막을 보고 가입을 결심했다. 부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곧바로 부인의 타박이 들어왔다. “무슨 조기축구회야, 뼈 부러지려고….”

얼마 전에는 세탁소에 맡긴 옷이 늦게 도착해 화를 냈다가 부인으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세탁소 구전(口傳)효과가 얼마나 큰데 화를 내. 웃으면서 잘해 줘.”

물론 ‘난공불락’의 전통적 남편상도 있다. 열린우리당 이은영(李銀榮·53) 의원의 남편인 충남대 박진도(朴珍道·53·경제학) 교수가 그렇다. 종갓집 종손인 그는 가족간의 우애를 중시하고 엄격하다. 이 의원은 오후 10시가 ‘통금시간’이다. 맏며느리인 이 의원은 시댁 제사 음식도 손수 장만한다. 살림은 살림이고, 의정활동은 의정활동이다.

17대 국회의 여성의원은 모두 39명. 이 중 기혼 의원은 28명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중심의 가정에서 이들은 현재 ‘마이너’다. 하지만 남편을 둔 의원이건, 의원의 남편이건 공통점은 있다. 어차피 부부는 같이 간다는 것, 그리고 ‘2인3각’이라는 사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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