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북 강경책’반대]강경발언 속사정있나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32분


“대통령의 말씀에는 실언(失言)이란 없는 법이다. 물론 실무진이 그렇게 말했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정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 오찬 연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바꿔 말하면 실무진의 말이라면 외교적 논란이 될 만한 민감한 얘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믿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며 미국과 다른 대북 인식을 직설적으로 나타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 통일부 외교통상부’ 공동 명의로 낸 해설 자료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한미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 뒤에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을 때 한미간에 비공개리에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논의됐던 일이 있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한미관계 전문가는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이 최근 방미해 노 대통령의 발언과 비슷한 얘기를 미측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미측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노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도 “발언 장소가 한국인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라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이 20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에 가선 부시 대통령 재선의 의미나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 성과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고, 한미간 대북 시각차는 조용히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 대통령은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LA 타임스는 13일 노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미측 참석자들이 “노 대통령이 설명한 북한은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대북협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고 북한을 너무 믿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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