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법쿠데타’ 발언 파문]‘헌재 때리기’로 忠淸 민심잡기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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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목희(李穆熙·사진) 의원이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사법(司法) 쿠데타’로 규정하고 헌재 재판관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불사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의원이 12일 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질의서에서 이같이 공세를 편 것은 동요하고 있는 충청권 민심을 겨냥한 것으로 당 지도부의 의중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권 ‘헌재 때리기’ 잇따라=이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10월 21일 헌재의 위헌결정을 ‘사법 쿠데타’라며 강하게 비난한 것은 헌재의 기능과 권한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이 의원은 당 지도부의 만류로 질문 때는 삭제했지만 미리 배포한 원고에선 “7인의 헌법재판관, 그들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 아래에서 판사와 검사를 지냈다”면서 “이제 개혁과 남북화해협력의 시대를 맞아 그들은 수구 기득권 세력을 수호하는 ‘법복 입은 정치인’이 됐다”고 재판관들을 공격했다.

이 의원은 또 원고를 통해 “윤영철 재판관 권성 재판관 김경일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송인준 재판관 주선회 재판관 이상경 재판관, 여러분의 과거와 관계없이 10월 21일의 위헌 결정만으로 물러날 사유가 충분하다”며 “역사의 탄핵을 받기 전에 스스로 내려오라”고 주장했다.

▽충청 대책 논란=열린우리당측은 이 의원의 연설문 내용이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송영길(宋永吉) 의원 등 34명의 여당 의원들은 헌재 재판관 전원의 인사청문회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출했고, 11일 당내 개혁당 출신인사 모임인 ‘참여정치연구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헌재를 강력히 비판한 것을 감안하면 충청권을 사수하겠다는 여권의 ‘충청 대책’이 표출된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충청권 출신의 한 의원은 “충청도에선 수도이전 이외의 다른 대안에 대해선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는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라며 “당에서 적극 나서 수도이전을 밀어주지 않으면 충청도에서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위기의식을 지도부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제 한나라당이 어떻게 하든, 충청권 표는 우리 쪽으로 몰리게 돼 있다”면서 “여당에선 충청권에 대해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이기만 해도 다음 선거에서는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됐다”고 말했다.

헌재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수도이전이 좌절됐다는 점을 꾸준히 부각시키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한편 이 의원은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가 연설문 내용을 완화할 것을 요구하자 ‘정치 헌재’ ‘수구 헌재’ ‘법복 입은 정치인’ 등 자극적인 표현은 삭제했으나 비판 기조는 유지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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