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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26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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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민간인 월북(越北)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수시간 동안 진행됐을 철책 지역 침입과 철책 절단 과정을 전혀 포착하지 못한 군의 허술한 경계태세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인의 철책 접근이 가능한가=군이 민간인 월북을 주장한 첫 번째 이유는 절단 부분을 분석한 결과 철책이 남쪽에서 잘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철책 통과 후 이 지역에서 발견된 운동화 자국과 손자국, 무릎 자국 등이 모두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며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
철책 절단 방법과 이후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절단된 철책으로 다시 구멍을 메운 수법이 군인의 행동으로 보기엔 매우 허술하다는 점도 민간인 추정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민간인이 군 초소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 통제구역이나 철책 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전방지역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한 장교 A씨는 “사실 산을 타고 몰래 들어오면 군부대가 관할하는 민간인 통제구역에 들어올 수 있다”며 “하지만 몰래 철책까지 접근하는 것은 현지 근무 병사들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설령 민간인이 들어왔다고 해도 수시로 순찰을 도는 군인들에게 1시간 내에 적발된다는 것. 더욱이 3중 철책을 절단기로 끊고 북한 지역까지 1.5∼2km를 나아간다는 것은 해당 지형과 철책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고 수개월 동안 침투를 준비한 특수부대원들이나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철책이 월북 경로로 적당한가=문제의 민간인이 월북 경로로 수많은 군인이 경계를 서는 철책 지역을 택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남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이미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입북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철책 지역에는 미확인 지뢰가 매우 많다.
주 철책과 보조 철책을 뚫고 들어간 남방한계선 북쪽 지역은 군인들조차 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지뢰 제거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철책 통과를 위해서는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합참 관계자는 “1960, 70년대 월북한 전방지역 군인들은 자기 부대 구역의 지뢰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어 이를 피해 갔다”며 “민간인이 지뢰 지역을 통해 월북했다는 말이 제일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책 절단하는 동안 군은 뭘 했나=3중 철책을 뚫고 북한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1, 2시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26일 밤 이 지역을 관할하는 A사단 경계병력은 월북 민간인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당일 철책 경계근무 형태는 부대 경계병력의 3분의 1가량만 투입하는 ‘C형’이었다. 1∼2시간 동안 1, 2 조(1조는 2명)의 병사들이 같은 지역을 순찰하는 방식이다. 결국 일부 병사들이 경계와 순찰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의 성급한 결론 도출=군이 월북 민간인의 신원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북한군 침투 가능성을 배제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일 이번에 북한군이 침투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여권이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강력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군이 혹시 여권의 정치적 상황을 의식해 북한의 침투 가능성을 서둘러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합참 황중선 작전처장은 “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무 것도 숨기거나 속이지 않고 있다”며 “‘민간인 월북’은 군,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서 나온 이 분야의 최고 베테랑들이 모여 조사하고 토의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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