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법안 격돌]열린우리, 강행하자니 ‘날치기’ 부담

  • 입력 2004년 10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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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17일 의원총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4대 법안’을 확정함으로써 정치권 관심의 초점이 ‘법안 성안’에서 ‘법안 처리과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법안 성안은 열린우리당 ‘내부행사’였지만 처리과정은 이 법안들을 극렬히 반대하는 한나라당과의 게임이다.

그러나 처리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수많은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내달 초 법안들을 상정한 뒤 예산안 줄다리기가 본격화되는 12월이 오기 전 모두 처리할 방침이다. 방법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다수결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실력저지 등을 포함해 물리력을 동원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에 모아진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실력 저지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은 16일 “여당은 국회법상 절차를 무시한 채 날치기로 국민분열법을 강행처리한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다”며 “한나라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체제를 훼손하는 악법 개정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사전에 쐐기를 박았다.

열린우리당의 고민은 ‘강행 처리’라는 극약처방을 쉽게 내놓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덕성을 당의 존립근거로 내세워 온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원내 사령탑인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나 총대를 메야 할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 김덕규(金德圭) 부의장의 성향도 날치기와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피하고 싶은 잔’이다.

당직자들도 “어떻게 우리가 날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딱히 다른 길도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타협에 돌입하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주고받기식의 협상에 나서야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에 정치생명까지 건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태도를 감안할 때 타협을 모색하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여야는 아직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조차 안 돼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합리적 보수’로의 노선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을 어느 선까지 반대해야 하는지, 당내 대다수가 공감하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오히려 법안 저지과정에서 내부 이념투쟁의 재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 모두 배후에 찬반 입장을 명확히 갖고 있는 지지층이 자리 잡고 있어 운신의 폭이 좁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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