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5·18묘지 전원참배’ 진통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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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여야가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로 열띤 공방을 벌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오른쪽)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제기자
23일 여야가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로 열띤 공방을 벌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오른쪽)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제기자
한나라당이 당의 정체성 및 진로 문제를 놓고 심각한 내홍 양상을 보이고 있다.

28일부터 2박3일간 호남지역에서 열리는 의원 연찬회의 마지막 일정인 광주 5·18국립묘지 참배 문제가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김용갑(金容甲) 안택수(安澤秀) 박종근(朴鍾根) 이방호(李方鎬) 의원 등 보수적인 영남권 의원들은 “의원 전체의 참배는 당의 정서와 맞지 않다”며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원희룡(元喜龍) 정병국(鄭柄國) 의원 등 소장파들은 “그런 식으로 가면 지역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호남을 끌어안아야 한다”며 반박했고, 유기준(兪奇濬) 김희정(金姬廷) 의원 등 젊은 초선 의원들도 이에 가세해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의원들의 설전은 2시간반가량 이어졌으나 이견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갈등이 단순히 참배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호 의원은 이날 “젊은 의원 몇 명의 의견에 따라 당 전체가 움직일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평소 영남권 보수 의원들이 소장파 등 당내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당의 진로를 주도하는 데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을 토로한 것. 이 의원은 영남권 보수 의원 10여명이 소속된 ‘자유포럼’의 간사로 이날 의총에 앞서 자유포럼 내부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종근 의원은 “미래연대 세력이 한나라당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미래연대는 16대 국회에서 당의 변화를 주도했던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권영세 의원 등 소장파의 모임으로, 현재 이들이 속해 있는 ‘새정치 수요모임’의 전신이다.

이날 불거진 양측의 대립은 지도부까지 끌어들이는 당 전체의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김용갑 박종근 의원 등이 이날 “최근 과거사 청산 문제 등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한 배경도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당내에선 이를 당의 중심에서 소외된 영남권 의원들의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의총을 마무리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면서도 참배 계획의 수정 여부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정대로 참배가 추진될 경우 갈등이 심해져 영남권 보수 의원들이 연찬회에 집단으로 불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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