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정부에 情떼기’…“주요정책 일방추진 실망”

  • 입력 2004년 6월 18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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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인 이슈보다는 민생 현안에 집중할 시점이라는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각 시민단체 사이에 ‘정체성’ 찾기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이라크 추가파병,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의 대형 이슈들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겪으면서 정부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생긴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거리두기’=그동안 노무현(盧武鉉) 정부와 대다수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대통령 탄핵사건과 정치개혁 언론개혁 등의 현안에 대해 보조를 맞춰 왔다. 이념적 성향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존과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공조(共助)’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시민단체 내부의 시각이다. 참여연대 민중연대 등 350여개 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정부가 다수여당의 힘을 믿고 횡포를 부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분개하는 더 큰 이유는 청와대가 시민단체와의 조정을 담당하는 시민사회수석비서관까지 신설하고도 시민단체와는 어떤 교감도 없이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 특히 17대 국회가 출범하면 ‘파병 철회’를 공식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이들 단체는 당혹감마저 느끼고 있다.

참여연대의 이태호 정책실장은 “정부가 우리와 교감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겠느냐”면서 “본연의 기능인 권력 감시를 더욱 강화해 정부와 여당을 모니터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언제부터 기업의 마인드를 따랐는지 모르겠다”며 “교감은 둘째 치고 그 흔한 토론회 한 번 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렇듯 정부와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자 일부 시민단체들은 국회 통과를 자신하던 쟁점들마저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김금옥 정책국장은 “최근 호주제 문제와 관련해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어 대처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성을 찾자’=이런 가운데 정치문제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로 관심을 쏟으려는 변화도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탄핵 문제와도 다소 거리를 유지했던 경실련은 시민단체가 예전과 같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이슈를 다루려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부터 아파트 분양원가 문제에 집중해 온 것도 같은 맥락.

경실련의 윤순철 정책실장은 “이제 시민들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확실한 대안을 내놓는 시민단체를 요구하고 있다”며 “주택 분야와 내년에 대비해 준비 중인 교육 분야를 2대 핵심사업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도 ‘본업’인 환경문제에 더욱 치중하기로 했다. 환경단체들은 경부고속철도와 신도시 개발로 야기될 환경파괴 문제와 ‘만두 파동’을 계기로 한 녹색소비운동 등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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