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역시 難題… 개폐문제 더 숙고를”

  • 입력 2004년 5월 4일 19시 19분


코멘트
《동아일보는 4일 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과 민주노동당 이재영(李在英)정책실장을 서울 광화문 사옥으로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본보가 지난달 28일부터 4회에 걸쳐 연재한 17대 국회의 쟁점법안에 관한 각 당의 입장을 수렴해 합의 가능성과 쟁점을 분명히 정리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토론에서 각 당은 국가보안법 개정과 비정규직, 민생경제대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서는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정 의장=국가보안법에 대한 우리 당의 기본 입장은 개정 또는 폐지였다. 반국가단체의 개념(2조)은 새로 정리해야 하고 최소한 찬양고무죄(7조) 불고지죄(10조) 등은 없애야 한다는 게 우리 당의 최소 목표다. 거기서 어디까지 더 나갈 것이냐가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이에 관한 당의 방침은 국회의원 당선자 2차 워크숍 등 내부 논의과정을 거쳐야 확정할 수 있다.

▽이 실장=지난해 건국대 학생이 집에 ‘자본론’을 갖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됐다. 정-이 의장도 정책을 다루려면 집에 자본론을 갖고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찬양고무죄 불고지죄만 폐지하는 방안을 거론하는데 법을 그냥 없애면 된다. 형법으로도 충분히 간첩을 잡을 수 있다.

▽정 의장=국가보안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임에는 틀림없다. 논란만 야기하고 불필요하게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다. 개정하든 폐지하든 개선할 필요는 있다.

▽이 의장=6·15공동선언 이후에도 북한의 대규모 군사훈련과 대남적화 노선은 달라진 게 없다. 당초 보안법을 만들 때의 상황과 기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보안법 ‘폐지’는 현실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다만 문제조항의 ‘개정’은 검토할 수 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개정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지 의견을 더 수렴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당 정치개혁특위에서 구체적 내용들을 논의 중인데 그 결과를 토대로 다시 전체 의원들의 토론을 거쳐 당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이 실장=당으로선 일단 폐지안을 내겠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3개 조항만 없애는 개정안을 제출한다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공식 결정은 아니고 사견이다.

▽정 의장=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고 사용자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우리 당의 공약이다. 문제는 해법과 재원이다.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완화, 합리적 임금체계 확립, 특수직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4대 보험을 확대적용하는 등 현실성 있는 개선안을 추진해 정규직과의 격차가 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의장=비정규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노사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고자 하는 기업들에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할 것을 강제하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다. 네덜란드식으로 정규직에게 돌아갈 혜택범위 내에서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적립을 해나가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노사간에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합의를 도출하고 정부도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고용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추진해온 데 이어 서면계약을 의무화해 기업주의 의무를 강화하고, 파견근로자의 휴식에 관한 종합적인 법률을 제정하려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적용도 점차 확대돼야 한다.

▽이 실장=비정규직이 장기적으론 기업에 더 부담을 준다는 보고서도 많다. 비숙련 비정규직으로 인한 교육비용 숙련비용이 더 든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양산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경제가 지나치게 대기업 중심으로 가면서 중소기업들이 불공정 하도급으로 인해 비정규직을 쓰도록 강요당한다. 따라서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 의장=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정부가 예산을 출연해서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한다면 세계무역기구(WTO)와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노사가 대타협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바탕에서 국회가 제도적 개선을 하자는 것이다.

▽이 의장=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5% 정도로 해 달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관철한다면 현실적으로 20조원에서 26조원가량의 부담을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70∼80%가 5년 내에 해외로 이전해 나가겠다는 상황인데 비정규직 문제로 부담이 가중된다면 어찌되겠나. 자칫 기업의 대거 국외이탈로 인해 엄청난 고용문제 실업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의장=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국회 윤리위원회는 100% 외부인사를 모셔서 독자적 합리적으로 권한을 행사토록 하겠다. 특히 불체포특권은 선거비리 직무비리에 대해서는 적용을 배제토록 하겠다.

▽이 실장=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있는 국민소환제를 양당 대표회담에서 수용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공직자 소환 요건을 지나치게 높여 놓으면 소환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므로 소환발의 정족수를 유권자의 5분의 1 또는 10분의 1 정도로 해야 한다.

▽이 의장=출자총액제한제와 관련해 우리 당은 지난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기업투명성을 높이게 만들었지만 지금 기업들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는 일이다. 외국의 재벌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자산과 비교하면 우리 기업들은 100분의 1, 100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또한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들이 살아나려면 정부의 규제를 줄여야 한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는 재고돼야 한다. 기업경쟁력에 부담을 주는 정부간섭을 배제하고 투자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최소한 5년간은 ‘묻지마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상황이다.

▽정 의장=투자와 출자총액제한제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시장의 투명성과 회계제도가 국제기준에 미달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점차 투명한 기업 시스템이 정착되면 나중에 이를 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외환위기가 왜 왔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황제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무분별하고 불투명한 기업 경영에 대한 내부견제와 시장감시제를 당분간은 유지해야 한다.

▽이 의장=열린우리당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는데 추경의 재원은 결국 국민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소비를 증진시켜서 투자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추경은 맞지 않는다. 또 지금도 재정적자가 엄청난 데 언제까지 추경으로 자꾸 지출할 것이냐. 유휴자본이 400조원이나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 돈을 끌어들여서 경제를 살리는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 추경을 통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 부동산 문제나 카드채 문제와 같은 후유증이 자꾸 생긴다. 어려운 때지만 시장경제 원리를 살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정 의장=추경은 경기진작용과 민생안정용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주장하는 것은 후자이다. 중소기업이 참 어렵고, 벤처기업도 금융만기가 도래하는데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줄도산하게 돼 있다. 심각한 민생위기인 만큼 재정으로라도 위기 타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지난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 처리 관련 협상을 할 때 한나라당의 적극적인 제기로 4000억원을 피해농가 등을 위한 기금으로 재정에서 출자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는 양당이 추경이 있다는 전제 아래 합의한 것이다. 또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도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